눈물·분노·절망…트라우마로 남은 11·2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침입 사건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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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분노·절망…트라우마로 남은 11·2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침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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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8 06:52:14 | 수정 : 2017-12-08 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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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7일 경찰대응 전면 쇄신 위한 긴급 정책토론회 열어
경찰 부적절한 대응으로 결국 쉼터 폐쇄…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 소송 검토 중
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있는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기능 정지사태, 전면쇄신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가정폭력 경찰대응 전면쇄신을 위한 긴급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 (뉴스한국)
“활동가와 엄마로부터 여기는 ‘비밀의 집’이라고 이젠 폭력을 안 당해도 된다고 설명을 들었던 동반아동은 폭력을 행했던 가해자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상황 속에 차 안에서 고개 숙여 탈출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지 않았을까”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연 ‘가정폭력 경찰대응 전면쇄신을 위한 긴급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발제하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달 2일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동반 아동 9명이 가해자의 눈을 피해 쉼터를 탈출해야만 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고 상임대표는 여러 차례 눈물을 삼켰다. 가정폭력 추방 운동을 시작한 지 30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한 지 20년 된 해에 일어난 일이다.

“가해자가 쉼터 침해한 3시간, 국가의 피해자 보호기능 일시 정지 상태”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문제 등과 싸우는 여성·사회계는 지난달 2일 벌어진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침입 사건이 쉽게 낫지 않을 깊은 상처로 남았다고 토로한다. 국내 첫 쉼터라는 상징성을 지닌 30년 역사의 한국여성의전화가 이 정도이니 그 외 다른 쉼터들의 실태는 어떠하겠냐는 말도 나왔다.

고 상임대표의 말처럼 쉼터는 가정폭력 피해자 최후의 피난처다. 피해자들을 가해자로부터 온전히 보호하기 위해 사회가 나서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곳이다. 그런 쉼터를 가해자가 알아내 침입한 것도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출동한 경찰은 “찾아왔으면 (가해자라도) 적어도 민원인 아닌가. 경찰 민원인도 되고 여기(쉼터) 민원인도 된다”며 가해자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당시 상황을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1시간이 지나 2차 출동한 여성청소년계 경찰관은 쌍방의 신고를 모두 ‘존중’했다. ‘가출한’ 아내와 아이들을 찾으려는 아버지와, 쉼터로 피신해 남편을 거부하는 여성. 아마 이것이 그들이 가진 사건의 구도였던 것 같다. 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등한 민원인’으로 대우했고 아이들을 찾아온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이후 진행된 쉼터 입소자들의 피신 과정에서 경찰은 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쉼터 종사자들이 몸을 던져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켰음으로 굳이 가해자를 격리하는 행위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초저녁에 시작된 사건은 한밤중이 되어 끝났다.”

신 교수는 이 사건이 지금까지 일어난 수많은 가정폭력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이라고 말한다. 가정폭력 자체가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지만 특히 쉼터 침입 사건은 국가의 피해자 보호시설을 침해한 것으로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침해’라고 규정한 이유가, 단순히 시설에 들어갔다는 불법성을 넘어 입소자들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국가 피해자 보호시설의 존재 자체가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보호시설에 침입한 행위는 명백히 국가권력에 도전한 것이며 공무 집행을 방해한 행위다. 따라서 이 사건이 ‘아이들을 찾아온 아버지’의 소동으로 축소·해석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그의 행위를 ‘주거의 평온’ 여부에 국한해서도 안 된다”며, “국가 피해자 보호시설은 ‘주거’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살피는 임무를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발생해서 끝나기까지 3시간 이상의 시간 동안 국가의 피해자 보호기능은 일시 정지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객석에서는 더욱 격한 감정이 쏟아졌다. 손을 들어 마이크를 받은 이들은 전국 각지 ‘최후의 피난처’에서 가정폭력과 맞서 싸우는 일선의 활동가들이다. 이들이 느끼는 절망감이 깊은 한숨과 눈물로 터져 나왔다. 이번 쉼터 침입 사건이 한국여성의전화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정폭력과 싸우는 활동가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래는 객석에서 나온 발언 중 일부다.

“긴급 정책토론회가 성공적이려면 먼저 가정폭력 대응을 잘못한 경찰의 사과가 먼저다. 경찰 책임자인 청장이 적어도 무엇이 잘못인지 사과해야 한다. 청장이 스스로 책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행정안전부 장관이 와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안부 장관이 스스로 책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전 공무원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문제다.”

“‘시지푸스의 신화(알베르 카뮈의 소설)’가 떠오른다. 또다시 돌을 메고 또 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와 또 돌멩이를 지고 올라가야 하는 마음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이번에 가진 트라우마가 그런 게 아닐까. 경찰들이 (토론회에 청중으로) 왔지만 왠지 허무감이 든다. (경찰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없고, 토론회를 하지만 희망이 안 보인다.”

“난민 상태의 가정폭력 피해자가 난민보호소 성격의 쉼터에서 다시 쫓겨난 상태에서 공권력마저 이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지위가 어떤 것인지 너무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두고 경찰은 ‘유감이다’·‘아쉽다’·‘경청해서 반영하겠다’는데, 언제까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2차·3차 난민을 만들고 왜 (피해자가) 모욕감을 당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강남역살인사건 때도 그렇고 (이 사회와 공권력이) 여성을 대체 인간으로 보는 것인지…”

제2 ‘쉼터 침입 사건’ 막으려면, “한국 경찰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탈피해야”
문제는 절망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는 이번 쉼터 침입 사건이 그간의 가정폭력 추방을 위한 노력과 과정을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가혹한 평가도 나오지만 어쨌든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알기에 토론자들은 경찰을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경찰이 변화하도록 손을 내밀면서도 이 과정에서 적잖은 내적 분열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고 상임대표는 “사건 이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 밤 가정폭력을 피해온 보호시설에서 또다시 다른 보호시설로 탈출하기 위해 차가운 거리로 내몰렸던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 순간도 너무나 고통스럽다”면서도 “악순환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이유는 경찰이 쇄신해야 가정폭력이 근절될 수 있다는 절박함과 이제 더 이상 가정폭력의 경찰 대응변화가 허울뿐인 대책과 구호, 관행 개선이 아닌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정책방안으로 국가 기능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밑바탕에 가부장적 가족 규범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질타했다. 성역할을 중심으로 가족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이를 '가부장적 가족의 위기'로 보고 과거 상태로 돌아가려는 퇴행적 반응이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경찰 조직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여성이 남편의 학대와 폭력을 당하면서도 가족을 지킨 것을 신화로 여기고, 가해자를 피해 집을 떠난 여성을 가정파괴자로 낙인찍는 황당한 인식을 경찰 역시 반복한다는 게 신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가정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찰관들의 언행은 이런 퇴행적 성차별적 정서를 내면화하고 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등한 민원이라는 경찰의 주장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가정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찰조직이 남성중심적 조직문화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선 경찰관들의 상당수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건 현장에서 좀 더 빠르게 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 규범과 성차별적 젠더의식이라는 1차원적 의식임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토론자들은 경찰 개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것보다 교육과 제도로 경찰 조직 전체를 변화시켜 경찰 개인을 이끄는 게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990년대 초 대구여성의전화를 시작으로 가정폭력과 싸우고 있는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경찰공무원 양성과 직무교육 전반에서 가정폭력 인식과 대응력을 강화하는 교육과정을 두텁게 해야 한다는 고 상임대표의 정책 제안에 적극 찬성했다. 이와 함께 여성폭력 대응훈련을 해야 한다는 데 격하게 공감했다.

강 공동대표는 “파출소·지구대 소속 경찰은 피해자가 처음 만나는 1차 접견자인 만큼 반드시 교육을 해야 한다. 이성으로는 경찰도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기득권층으로 살아온 남성인 만큼 마음이 안 움직인다. 교육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가정폭력 피해자는 또 죽어난다. 그러니 모의 훈련을 해야 한다. 마음이 안 움직이더라도 가정폭력 사건 상황을 마주치면 신고 접수부터 사건 종결까지 피해자 안전과 가해자 책임을 우선하는 매뉴얼에 따라 몸이 먼저 반응하게끔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번 쉼터 침입 사건으로 해당 쉼터를 폐쇄한 만큼 경찰에 배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고 상임대표는 “피해자들이 겪은 것은 ‘트라우마’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검토하고 있고, 변호사들과 두 차례 걸쳐 회의도 했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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