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았지만 장애인이 됐고 죽은 동료는 100명을 넘었습니다”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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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았지만 장애인이 됐고 죽은 동료는 100명을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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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5 00:28:33 | 수정 : 2018-07-23 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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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삼성에 직업병 피해 인정·사과·배상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
집회 참가자들 인간띠 만들어 삼성 사옥 둘러싸고 “삼성이 답하라” 외쳐
4일 오후 7시 40분께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옆에서 반올림,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원회, 민중공동행동 등이 '삼성 포위의 날' 행사를 시작했다. 행렬 맨 앞부터 차례로 한혜경 씨, 한 씨의 어머니,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뉴스한국)
1002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 서울 강남구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4일로 1002일을 맞았다. 삼성 공장에서 반도체·LCD를 만들다 백혈병·암·재생불량성빈혈 등으로 죽어간 이들의 숫자가 118명을 기록했지만 삼성은 이들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다. 잔인하고 가혹한 침묵을 끝내라고, 이제 피해자들에게 사과·배상하고, 재발 방지하라고 2015년 10월 시작한 농성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날 반올림은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원회, 민중공동행동과 함께 삼성사옥 앞에서 '삼성 포위의 날' 집회를 열어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삼성의 사과를 촉구했다. 문송면 군은 14살에 온도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15살이던 1988년에 삶을 마감한 직업병 피해자다. 원진 노동자는 원진레이온에서 실을 뽑는 일을 하며 유독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915명의 피해자를 말한다. 이들 중 230명이 목숨을 잃었다. 문 군이 사망한 지, 원진 노동자 사태가 알려진 지 올해로 3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노동 현장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실명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삼성 포위의 날' 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삼성 사옥을 둘러 행진하는 모습. (뉴스한국)
오후 6시 삼성사옥 앞에서 시작한 추모식에서 문 군의 형은 무대에 올라 “동생은 모든 고통을 다 느끼고 떠났다. 동생은 이제 없는데 회사는 그대로다”며 절망했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죽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는 게 과도한 요구인가. 너무도 상식적이고 소박한 요구다. 문송면의 죽음에서 30년이 지나 황유미, 황유미의 친구들의 죽음을 목도한다”며, “사업주가 이윤보다 노동자 안전을 신경 썼다면 정부가 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적어도 목숨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산재 사망은 산재 살인이다. 자본의 탐욕이 남긴 살인”이라고 말했다. 황유미(사망 당시 22살)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일을 하다 백혈병으로 2007년 목숨을 잃었다. 황 씨의 죽음을 계기로 그해 11월 결성한 단체가 반올림이다.

휠체어로 움직이는 한혜경 씨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무대에 올랐다. 1995년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 들어가 6년 동안 일한 후 2005년 뇌종양 판정을 받은 피해자다. 한 씨는 “저는 일하면서 무엇이 유해한지 전혀 몰랐다. 몸이 안 좋아 퇴사한 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수술 끝에 살았지만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됐다. 저는 살았지만 죽은 동료는 100명을 넘었다”고 쓴 원고를 겨우 읽었다. 한 씨는 언어·시력장애를 겪고 있다. 그는 “삼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왜 안전교육조차 시키지 않았는지, 삼성의 사과를 꼭 받고 싶다. 그런데 1000일 동안 농성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다.

'삼성 포위의 날' 행사 참가자들이 오후 8시 20분께 삼성 사옥 정문 앞에 도착했다. (뉴스한국)
11년 동안 반올림으로 직업병 피해를 제보한 삼성 노동자는 320명이다. 이 가운데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법원이 삼성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했지만 삼성은 영업비밀이 담겨 있다며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독성정보가 영업비밀이고 핵심정보인가”라며, “독성정보를 감추면 산재 살인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모식에 이어 추모문화제를 마친 후 오후 7시 40분께 삼성을 포위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풍물패를 따라 사옥을 오른쪽에 두고 돌기 시작했다. “(이)재용아 나와라”고 풍물패가 선창하면 꽹과리에 맞춰 시민들이 연거푸 따라했다. 삼성을 포위하는 과정에서 예정한 연사들이 한 명씩 나와 삼성을 규탄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먼저 지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선거 후보가, 삼성과 반올림이 대화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를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노동자가 알 권리·참여할 권리·거부할 권리를 얻지 못하면 정규직이어도 또는 직접 고용됐더라도 절대 안전할 수 없다는 날선 지적도 했다. 5년 전만 해도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삼성 노조가 대세’가 됐다며 노조 가입을 독려하기도 했다. 사옥을 한 바퀴 모두 돌아 선두가 정문 앞에 서자 참가자들은 “너희들은 포위됐다. 재벌체제 끝장내라”고 외쳤다.

4일 오후 8시 34분께 '삼성 포위의 날' 행사 참가자들이 양팔을 벌려 옆 사람과 손을 잡고 삼성 사옥을 둘러 포위했다. (뉴스한국)
이어 오후 8시 40분께 마지막 연사인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이 ‘삼성직업병 해결을 위한 삼성포위행동 참가자 선언’을 읽었다. 한 문장을 마칠 때마다 참가자들이 이 문장을 반복했다. 공유 부센터장과 참가자들은 “삼성이 외면한 가운데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하라는 반올림의 요구는 외면당했다. 삼성이 대화를 거부한 날 시작된 반올림 농성이 이제 1000일을 넘었다”며,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라. 배제 없이 보상하라. 더 이상 직업병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 삼성은 직업병 문제 해결하라. 이제 삼성이 답하라”고 외쳤다.

한편 이날 집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삼성 사옥 건물을 둘러 가림막이 등장했다. 경찰 병력은 삼성 사옥으로 들어가는 모든 공간을 인간 장벽으로 막았다. 이 같은 경계 분위기와 달리 집회는 안전하고 평화롭게 끝났다. 이날 오후 8시 45분께 집회를 마무리 했지만 삼성 사옥에서 집회 장면을 내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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