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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중국엔 배상, 한국엔 분통…日 판이한 대처, 왜

등록 2018-11-02 08:33:36 | 수정 2018-11-02 08:40:16

● 일본 "국제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 "매우 유감"
● 반면 중국 징용 피해자들에겐 사과와 배상 여러건
● 니시마츠건설·가지마건설 등 수억~수십억씩 지급
●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3765명에게 총 80억엔 지원
● 중국 정부와 언론, 日 회피에 시종일관 강경 대응
● 中 외교부 대변인 "日 해석은 불법적이고 무효다"
● 中 부총리 "중일공동성명, 국민 청구권 포기 아냐"
● 韓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민간인 청구권 다 해결"
●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99엔 사건' 때도 소극 대응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제 시기 무수한 조선인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던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은 최근 우리나라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즉각 강력한 반발에 나섰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부장관(차관급)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쌓아온 한일 우호 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나카소네 히로후미 전 외무상은 같은 날 자민당 외교부회 회의에 참석해 "한국은 국가로서의 몸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징용을 둘러싼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된 것이다. 이를 뒤집는 것은 국제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신일철주금 등 철강업체들로 구성된 일본철강연맹의 카키기 아츠시 회장(JFE 스틸 사장)은 "한일 관계의 기초가 되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다"라고 했으며, 역시 강제노역에 앞장섰던 미쓰비시 중공업의 미야나가 šœ이치 사장도 기자회견에서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이 과연 '있을 수 없는 일'일까. 일부 외무성이 국제 재판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오는 가운데, 과거 중국인 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측이 사과와 배상을 한 전례가 여러 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인 피해자들, 日 법원서 패소해도 배상 받아

지난 2009년 10월 중국인 노무동원 피해자 360명은 태평양 전쟁 시기 강제동원을 자행했던 일본 전범기업과 극적인 화해를 이뤘다. 가해자인 니시마츠건설 측은 일본 특유의 애매한 수사가 아닌, 명백하고 직접적인 사죄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으로 실천했다. 단계적으로 보상금도 지급했다. 금액은 총 2억 5000만 엔(당시 한화 약 32억 원). 피해자들은 1943년에서 45년 8월 종전 때까지 니시마츠건설에 의해 일본 히로시마현 야스노 수력발전소 공사 현장으로 끌려갔던 노무자 또는 그 유족이다. 도쿄에 본사를 둔 니시마츠건설은 댐과 터널 등 대형 토목공사를 주로 벌이는 중견 기업이다.

또 다른 중국인 183명도 2010년 4월 이 기업과 화해를 이뤄냈다. 니가타현 시나노가와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혹사당했던 노무자 출신이다. 이들 역시 사과와 함께 화해금 1억 2800만 엔(한화 약 15억 2000만원)을 받아냈다. 니시마츠건설은 야스노 발전소 노역 피해자들과 과거사를 정리한 것을 계기로 시나노가와 발전소 피해자들에게도 깨끗이 보상했다.

물론 중국 피해자들의 승리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앞서 1998년 중국인 피해자 대표 5명이 니시마츠건설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제기해 시작된 민사소송은 패소로 끝났다.

1심에선 청구시효인 10년이 지났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2심에서는 "현저한 인권침해에 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권리 남용"이라는 판결을 받아내 승소했다. 니시마츠건설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3심까지 끌고 갔고, 2007년 4월27일 도쿄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는 '중일공동성명'에 따라 중국인 개인은 피해보상 청구권이 없다며 최종적으로 니시마츠 손을 들어줬다.

1972년 9월 29일 발표된 중일공동성명은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 이래 단절돼 있던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다. 1965년 한국과 일본 정부가 국교 정상화를 위해 체결한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일공동성명 제5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도모하기 위해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할 것을 선포한다'고 돼 있다. 이에 근거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중일공동성명은 개인의 손해배상 등의 청구권을 포함, 전쟁 중에 발생한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바 원고들은 재판상의 청구 자격을 상실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당시 재판장은 판결을 내리면서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은 원고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관계자의 노력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힘입은 피해자 측은 포기하지 않고 기업 측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했다. 니시마츠건설은 판결 직후 "더 이상 문제 될 게 없다"던 자세에서 점차 벗어나 피해자들과의 협상에 응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같은 해 10월 23일 양 측은 도쿄 간이재판소에 화해신청서를 제출했다. 기업이 역사적 책임을 인식해 '깊은 사죄의 뜻'을 표명하고 피해 배상과 실종자 조사, 기념비 건립 등을 위해 2억 5000만 엔의 구제기금을 신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니시마츠 측은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진심으로 사죄했고 이를 일본과 중국의 언론 매체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법원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한 사례는 니시마츠건설 건 외에도 존재한다.

2000년 11월 일본 '가지마건설'은 태평양 전쟁 말기 징용됐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해 집단봉기한 이른바 하나오카 사건에 관해 회사 측 잘못을 시인하고, 5억 엔의 배상기금을 마련한다는 조건으로 피해자 측과 화해했다. 당시 배상금 수혜 대상자는 구타와 고문, 질병 등으로 숨진 희생자 418명의 유족을 포함해 986명이나 됐다.

2004년 9월 일본 최대 스테인리스 철강회사인 '닛폰야킨코규'는 징용 피해를 입은 중국인 6명에게 각각 350만 엔(약 3600만원)씩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하고 6년여를 끌어온 법적 분쟁을 끝냈다. 1944년 교토부 소재 니켈광산에 끌려와 강제노역했던 당사자 4명과 유족 2명은 1998년 닛폰야킨코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한 바 있다. 교토 지방법원은 당시 일본 정부와 기업 측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공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2003년 1월 원고들의 손배 요구를 기각했다. 피해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소해 소송을 계속 진행하다가 마침내 기업 측과 화해를 이뤄냈다.

2015년 7월 대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미쓰비시광업)은 중국 피해자들과 사과 및 보상에 합의했다.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무려 3765명을 대상으로 1인당 10만 위안(당시 한화 187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합의 역시 중국인 피해자들이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나왔다. 중궈신원왕은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이 중국 피해자단체들과의 합의 과정에서 2차대전 중 일본 정부가 3만9000명의 중국 노동자를 강제징용한 것과, 이 중 3765명이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 기업에서 노동했으며 이 중 720명이 사망하고 강제노역 중국인들이 인권을 침해당한 역사적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는 보상금 외에도 기념비 건설에 1억엔(약 9억3700만원), 실종자 조사비용에 2억엔 등을 추가 지출키로 해 최종 보상액수가 약 80억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었다.

◇일본의 판이한 반응…소극적 대응 일관한 한국 정부 책임은

이번 신일철주금 피해자들에 대한 판결은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판단이기 때문에 중국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같은 강제징용 피해자를 두고 중국과 한국을 대하는 일본 측 태도가 판이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시사점이 있다.

판결 이후 신일철주금 측은 입장자료까지 내며 "판결이 한일청구권 협정과 당사가 승소한 일본 법원의 확정판결에 반한다"며 반발했고, 아베 총리도 직접 나서 "1965년에 완전히 해결된 일"이라고 못박았다.

일본 측 반응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중국과 한국 정부의 대응 자세나 방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니시마츠건설의 사례를 보면, 이 회사가 처음부터 순순히 사죄하고 보상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강제동원 사실을 전면 부인하거나, "그건 국가에서 한 일이고 기업과는 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 식으로 자국의 최고재판소까지 소송을 끌고 가 기어코 승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태도를 바꿔 최고재판소의 '화해 권고'를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게다가 니시마츠 측은 당초 원고가 5명에 불과했음에도 히로시마 야스노 발전소 피해자 360명 전원에 대해 배상을 결정했다. 한 발 더 나가 니가타현 시나노가와 발전소 피해자 183명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화해 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와 언론의 움직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측에서 타당하게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관영 CCTV(중국중앙방송국) 등 언론매체에서도 이 사건을 일본 법원에서 심리할 때부터 추적 보도하며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바로 전날인 2007년 4월 26일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노동자에 대한 강제연행은 일본 군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저지른 중대한 범죄행위로, 일본 정부는 성실한 태도로 책임을 다하고 강제연행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함으로써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회적인 외교적 수사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직설적으로 일본 측을 압박한 것이다. 역대 한국 외교부에게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측이 ‘중일공동성명’을 이유로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류 대변인은 “중일공동성명은 중일 양국 정부가 조인한 엄숙한 정치적 문서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된 중일 관계의 회복과 발전을 위한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이 문서의 중요한 원칙과 사항에 대해서 사법적 해석을 포함한 일방적 해석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측은 중일공동성명(본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공동성명')으로 중국 '정부'의 청구권은 포기됐을망정 '개별 민간인'의 청구권이 포기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전쟁 배상의 주체는 국가(정부)와 국민으로 구분된다는 게 국제법의 기본 원칙이고 관례라는 주장이다. 이미 1995년 3월 7일 당시 첸치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일공동성명에 중국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이는 나라 간의 전쟁 배상에 제한될 뿐 중국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청구권 포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부일 뿐, 민간이 포기한다는 언급은 성명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류젠차오 대변인은 자국 국민들이 일본 법정에서 끝내 패소하자 "중국 측이 수차에 걸쳐 엄정하게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최고재판소가 일방적이고 편면적인 해석을 내린 데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한다"며 "이 해석은 또한 불법적이고 무효한 것"이라고 최고 수위의 항의를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CCTV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벌떼같이 일본 측을 비판하는 보도와 논평을 내보냈다. 일각에서는 니시마츠 불매운동까지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진출해 있는 영리기업 니시마츠건설은 회사 이미지 개선 여부를 놓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죄 요구를 끝까지 외면하고 버티면서 시간을 보낸다? 대형 건설사로서 기업 규모에 비하면 작은 액수일 수도 있는 화해금을 끝내 거부하고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 그건 현명한 판단이 될 수 없었다. 니시마츠건설이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까지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반면 역대 한국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민간인 청구권은 다 해결됐다는 자세를 취해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정부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의 후생연금(국민연금) 탈퇴수당 지급 요청에 일본 정부가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99엔'(한화 약 995원)을 지급하겠다며 치욕을 안겼던 사건에서도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던 바 있다.

일본 정부가 199엔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2015년 2차 요청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사인(私人)간 소송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한 발 빼는 모습도 보였다"고 분개했다.

김진영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간사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강제동원 뿐만이 아니라 유골 송환 등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진 않아 왔다"면서 "이번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이 변호사 출신이기도 하니 대법원 판결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라 정부가 움직일 것 같긴 하다"고 말했다.

국내 일각에서 일본과의 외교 관계 등을 거론하며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개탄을 표시했다. 그는 "일부 언론이긴 하지만 한심하다"면서 "한미일 공조에 위협이 가해진다든지 일본과 외교관계가 훼손된다든지 그런 이유만 든다면 우리나라는 뭘 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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