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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어느 개신교 목사의 축귀의식

등록 2006-02-27 15:50:55 | 수정 2006-02-27 15:50:54

1시간 반 동안 각목으로 명치 끝 복부 폭행…끝내 죽음
K목사 구속, C신학대학원생·재학생 K씨 포함 6명 불구속 입건

‘축귀’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폭행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교회나 절 같은 종교단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대부분.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인 축귀의식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작년 언론에 보도된 것만도 10여 건이 넘는다.
지난 1월에도 대구 모 장로교회 K목사와 신도들이 축귀의식이라며 1시간 30분 동안 한 신도를 폭행해 숨지게 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축귀 대상자를 각목으로 무차별 폭행한 K목사는 결국 구속되었고, 폭행에 가담한 C신학대학원생을 비롯한 신도 6명은 불구속 입건되었다.
몸속에 귀신 있어 죽은 것처럼 보일 뿐?

음력설을 며칠 앞둔 지난 1월 21일 새벽 3시경, 대구 동구 신서동에 소재한 한 병원 응급실로 20대의 한 남성이 긴급 후송돼 왔다. 복부를 심하게 맞아 피멍이 잔뜩 들어있는 상태였고 안타깝게도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병원 측은 폭행당한 흔적이 역력한 사체를 일단 영안실로 옮긴 후 곧바로 가까운 지구대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은 사건이 단순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 관할 경찰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사건은 단숨에 대구동부경찰서 강력2팀으로 넘어갔다. 사태 파악을 위해 병원으로 긴급 출동한 형사들은 경악했다. 사체는 분명 ‘맞아죽은’ 상태였던 것이다.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고 사망자를 후송해온 당사자들을 즉석에서 조사한 뒤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 대구 신서동 J교회 당회장 K목사를 긴급 구속했다.

경찰이 확인한 사망자는 김창길(가명. 26세)씨로 거주지는 충북 제천이었다. 본 기자가 경찰의 도움으로 현장에서 확인한 김씨의 시신은 휑하게 눈이 떠진 상태였고,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명치끝 복부에는 핏발이 선연했고, 허벅지는 갈색과 녹색의 피멍이 광범위하게 번져 있었다. 약간 마른 체구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김씨는 사망 직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다 죽어간 것이 분명했다.

대구동부경찰서 강력2팀 전상준 경장은 지구대의 수사 요청을 받고 병원에 간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피의자인 K목사는 그때까지도 사망한 피해자가 살아있다고 주장하면서 몸속에 아직 귀신이 있기 때문에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며 심폐소생술을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며 “(K목사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김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2시 30분경.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김씨의 사망 원인은 궁극적으로 ‘축귀’, 즉 귀신을 쫓을 목적으로 안수기도를 하던 중 가해자들이 자행한 폭행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해자 K목사와 신도 6명은 2006년 1월 21일 새벽 1시경 J교회 유아방에서 김씨의 복부를 손과 각목을 이용해 수차례 때리거나 눌렀다. 이 같은 무차별 폭행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되었다. 김씨를 폭행 치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들이 사용한 폭행 도구는 길이 45cm정도의 각목으로, 표면이 매끈하고 단단했다.

사체를 부검한 경북대 의대 이상한 교수는 “부검했을 때 복부에는 750cc의 혈액이 고여 있는 상태였다”며 김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원인으로 ‘장간막 파열’을 꼽았다. 이 교수는 “복부 출혈은 변사자가 죽기 전 손과 각목 같은 도구로 장시간 폭행당한 흔적”이라고 말했고 “다소 시일이 경과한 것으로 추정되는 타박상에 의한 피하출혈 흔적도 양쪽 대퇴부에 시퍼렇게 남아있었다”고 덧붙였다.

대퇴부에 남아있는 피하출혈 흔적은 김씨가 죽기 며칠 전에도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K목사와 폭행에 가담한 6명의 신도들은 김씨가 죽기 전 축귀의식을 가장한 폭행을 도대체 몇 번 정도 행했다는 것일까. 사건 발생 5일 후인 지난 1월 26일 경북 김천의 한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죽은 김씨의 아버지와 형을 만났다.

김씨 가족과 나눈 대화로 이번 사건의 진상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김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고 대구에 왔다가 제천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들의 치료비를 갚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고 말했다. 김씨의 형이 “평소 동생이 대인기피증에다 우울증이 있어 군제대 후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김씨 형의 말에 따르면 김씨가 평소 우울증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신질환처럼 정상적인 활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씨의 형은 “그간의 일을 돌이켜보니 동생이 K목사에게 붙들려서 얼마나 무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며 뒤늦게 동생의 고통을 짐작하게 된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K목사, “내가 병 고쳐주겠다” 안수기도 시작

경찰 조사 내용과 부검의 소견을 토대로 김씨의 가족과 정신과 의사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김씨는 사망하기 1년 전 군에서 제대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에다가 대인기피증까지 심해 대학 복학을 미루고 제천 고향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김씨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판단한 가족은 김천의 한 신경정신과의원에서 정신치료를 받도록 했다.

정신 상담과 약물치료로 김씨가 심적인 안정과 자신감을 되찾자 가족은 그를 복학시킬 요량으로 대구에 내려 보냈다. 김씨는 심적인 안정을 되찾았지만 확실시하기 위해 정신 상담과 약물치료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19일 통원치료를 끝으로 정신과 치료는 중단되었다.마지막으로 김씨와 정신 상담을 했던 담당의사는 그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의 담당의사는 “지난해 11월 19일 병원에 왔을 때 상태가 많이 좋았다. 복학 전에 공부하려고 대구에 와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사 입장에서 볼 때 정상생활이 기대될 정도로 상당히 호전돼 있었다”며 “대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내 소견으로는 김씨의 경우 정신상담 치료와 약물치료를 꾸준히 병행한다면 정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약을 끊을 경우 약효가 즉시 나타나지 않지만 천천히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악화될 수 있는데 이 사실은 김씨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씨가 장거리를 마다 않고 통원 치료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치료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원 치료가 중단된 11월 19일 이전에 김씨는 충북 제천에서 알고 지냈던 K목사를 대구에서 만났다. K목사가 제천에서 목회를 할 당시 김씨와 그의 가족은 독실한 신자로 그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K목사는 2년 전 제천을 떠나 대구에 개척 교회인 J교회를 세웠는데 김씨가 그를 대구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김씨는 K목사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김씨의 가족은 김씨가 K목사가 세운 J교회에 김씨가 출석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김씨와 K목사의 재회는 다행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었다. K목사는 김씨가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정신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신앙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며 병원 치료를 중단시켰다. 이후 K목사는 김씨에게 질병을 낫게 해주는 안수기도를 틈틈이 시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씨의 병이 낫기는커녕 상태가 더 악화되어갔다. 안수기도는 폭행을 동반한 안찰기도로 강도가 높아졌다. 그래도 김씨의 상태는 진전되지 않았다.급기야 사망하기 3일 전인 1월 17일 밤 10시경, 김씨가 교회를 뛰쳐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안찰기도 시 행해지는 폭행 수위가 높아지자 이를 못 견디고 가출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한겨울인데도 얇은 옷만 걸친 채 불안한 표정으로 지구대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시민들의 신고로 김씨는 대구 신서동 한 지구대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경찰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지구대로 인도된 김씨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K목사의 반대로 두 달가량 병원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던 김씨는 폭행이 주를 이루는 축귀 행위로 정신질환이 급속도로 악화돼 스스로를 주체하기 힘든 상태였던 것이다. 경찰이 보호자를 수소문한 끝에 충북 제천의 김씨 집에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그 시각, 교회를 뛰쳐나간 김씨를 찾던 K목사와 신도들이 지구대에서 보호 중이던 김씨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김씨를 데려갔다. 김씨를 데려가면서 K목사는 전화통화로 김씨 가족에게 “형제님은 밥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후 K목사와 신도들은 이날 감금과 폭행에 못 이겨 교회를 뛰쳐나간 김씨를 두고 귀신들림이 심해졌다고 판단해 이전보다 더 강한 축귀 행위를 시도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부검 시의 상태로 추정해볼 때 K목사와 신도들에 의해 다시 J교회로 돌아간 김씨는 그날 밤 양쪽 허벅지를 피멍들 정도로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그날 이후 3일간 교회에 감금되다시피 한 김씨가 또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망 당일인 1월 21일 새벽 1시경부터 문제의 축귀의식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김씨는 K목사와 신도들에게 사지를 붙들린 채 각목으로 복부를 내리 찍히는 등의 강도 높은 폭행을 당했다. 1시간 30분 동안 무차별적으로 행해진 폭행으로 김씨의 동공이 풀리고 맥박이 멈춘 것을 뒤늦게 알아챈 K목사와 신도들은 폭행을 멈추고 황급히 김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사건 당일, K목사와 신도들의 마지막 축귀의식이 치러질 때 현장을 목격한 J교회의 한 신도가 경찰 조사에서 기록한 진술서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기도회 중에 ○○이 옆에서 기도했는데



고동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