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짜유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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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8-31 01:47:45 | 수정 : 2007-08-31 01: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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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방짜유기를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 탄생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의 역사
세계적으로 기술 보존국이 희귀하며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유산인 방짜유기와 그 제작기술을 보존하고 전통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방짜유기 전문박물관이 국내 최초로 건립되었다. 바로 지난 5월 25일 개관하여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이다.

2004년 건축공사를 착공하여 2년 만에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모습을 드러낸 이 박물관은 유기전문 박물관이라는 특성화된 차별성 외에도 IT와 CT가 접목된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구축하여 신세대들에게도 선조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동기를 유발시키고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전시된 유기를 통해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되살리는 기회를 제공하며, 아이들에게는 부모님 세대에 대해 체험하는 생생한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 등 3개의 상설 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여기에 자료검색실, 문화사랑방, 영상교육실, 야외공연장과 방짜유기 음악치료의 장인 체험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기문화실은 방짜유기의 뿌리를 찾아가는 공간이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그 맥을 이어온 유기의 역사를 소개하고, 유기를 계승한 사람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유기의 종류와 재료, 그리고 방짜, 주물, 반방짜유기의 제작 과정을 축소 모형과 슬라이딩 비전을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식기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생명의 그릇으로서 방짜유기도 소개한다. 더불어 방짜유기의 과학적인 효과와 전통적인 방짜 악기의 소리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기증실에는 1983년 정부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 제 77호로 지정된 방짜유기장 이봉주 선생에게 기증받은 유기 275종, 1480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봉주 선생이 평생 수집, 제작한 방짜유기 가운데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정교하며 섬세한 작품들을 생활유기, 상차림, 제기류, 악기 등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유기그릇에 아름다운 음각 장식을 한 요즘 보기 힘든 유기그릇과 유기를 기증한 유기장 이봉주 선생의 삶도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지하 1층에 자리한 재현실은 1930년대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마을의 유기공방과 방짜유기가 거래되는 놋점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유기공방의 모습을 1:1 인물모형과 자동감지장치가 부착된 작동모형으로 연출하여 방짜유기의 제작과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뉴스한국
유기는 언제 만들어졌나?
우리나라에서 유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유기에 대한 흔적들은 기원전 청동기 시대에서부터 발견된다.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청동기문화와 관련이 있는 중국 요령지방 청동기문화를 받아들인 청동기 시대 초기에는 중국 요령식 동검과 조 문경(粗文鏡)을 제작하였다.

청동기 후기인 기원전 300년경 한국식 동검(細形銅)을 독자적으로 주조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세문경, 방울, 의식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 도구를 제작하였다. 유석(鍮石)이라 불리는 놋쇠는 구리에 아연 니켈을 합금한 것으로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유래하여 인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이후 구리 78%에 주석 22%를 합금한 한국 특유의 유기로 발전하였다.

기원전 3세기쯤에는 중국 연(燕)나라에서 명도전(明刀錢)과 함께 무기, 농기구 등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철을 이용해 무기류와 농기구 등을 생산하는 본격적인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이미 금은동철을 생산했는데, 무령왕릉에서 발굴한 금동제 대발은 백제가 유기를 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도 경덕왕 이전부터 ‘철유전’이라는 기관을 두고 철과 유석을 관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통일신라시대에는 유기재료와 제조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중국에서 ‘신라동’으로 부를 정도로 유명하였다. 청동으로 불상과 범종, 쇠북, 사리기 등 많은 미술품과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던 고려시대에는 유기 제작기술이 발전하여 생활용기와 동활자뿐 아니라 말기에는 하포 등 다양한 종류의 기물까지 제작하였다. 당시 왕족과 귀족들은 방짜 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청동기는 주조와 절삭가공법으로 모루쇠를 이용한 ‘타모법(타출법)’으로 기묘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쓰는 유기를 만드는 유장을 중앙 장인인 경공장으로 공조에 8명, 상의원에 4명을 두었고, 지방 관아에 필요한 유기를 만드는 외공장도 상당수 배치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 유기를 만들어 무역을 했으며 대마도주가 토산물을 바치며 유기를 원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시기에는 향로와 술잔 같은 제기, 식기류인 반상기를 비롯하여 촛대, 화로, 세숫대야, 담배합, 악기 등 많은 생활용품을 유기로 제작하였는데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었다.

17세기 이후 유기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생산량도 증가하였으며, 19세기 들어 전국에 유기점, 연죽점(놋담배통, 놋장죽대), 시점(숟가락, 젓가락)이 생기면서 다양한 유기제품을 생산하였다.

1900년경에는 납청의 놋점에서 1년에 180,240톤의 놋쇠를 소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기가 널리 보급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인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거의 모든 유기를 전쟁물자로 공출하고 유기 제작을 금지시켜 기술이 퇴보했을 뿐 아니라 한때 전통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기의 전통은 이어져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개성, 안성을 비롯하여 대구, 김천, 남원, 운봉, 전주 등 전국에서 유기그릇을 많이 만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늘면서 연탄가스에 쉽게 변색하는 유기그릇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선호하면서 유기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쇳독이 오르지 않고 살균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기는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뉴스한국
방짜유기의 멋과 실용성
유기는 성분의 비율에 따라 구리와 주석을 78대 22로 합금해 만든 놋그릇을 방짜유기, 구리와 아연을 합금해 만든 그릇을 황동유기, 구리에다 니켈을 합금해 만든 그릇을 백동유기라 부른다. 또한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로 구분한다.

방짜 유기의 유기는 놋그릇을, 방짜는 구리와 주석을 섞은 금속을 녹여 손으로 두들기고 때려서 만드는 제작기법을 지칭한다. 방짜는 공이 많이 들어가 만들기 가장 까다롭지만 유기 제품 중 으뜸으로 친다. 주물유기는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그릇을 만드는 방법이고, 반방짜는 절반은 주물로 절반은 방짜기법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이 3가지 기법은 각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김근수(주물), 한상춘(반방짜)씨와 함께 이봉주 씨가 방짜 기능보유자다.

주물유기가 두 사람 또는 소수의 인원으로 제작이 가능한 반면 방짜유기는 용해 → 네핌질 → 우김질 → 냄질 → 닥침질 → 제질 및 담금질 → 벼름질 → 가질의 여러 공정에 많은 인원과, 숙련된 기술,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협동 작업을 가장 필요로 한다.

방짜유기는 정확히 구리 78% 주석 22%의합금을 용해하여 도가니에 녹인 엿물로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덩어리를 만든다. 이 덩어리를 바둑 또는 바데기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여러 명(보통 11명)이 한 조가 되어 서로 도우면서 불에 달구고 망치로 치는 과정을 되풀이해가며 얇게 늘려 물건의 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짜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으며 비교적 변색되지 않는다. 그릇이라기보다 예술품에 가까운 방짜유기는 쓸수록 윤기가 나고 두드린 망치 자국의 멋이 은은히 남아 있어 수공예품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예부터 음식을 담는 반상기로 요긴하게 쓰인 방짜유기는 독성이 없고 영양분 배양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방짜유기는 농약성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며, 병원균 살균효과와 해독성을 가지고 있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대장균 중 가장 강력한 균으로 알려진 병원성 대장균 O-157균을 전통그릇인 방짜 그릇에 넣었더니 24시간 후 방짜 그릇에서 뿌연 침전물이 발견되었다. 이 침전물은 균이 사멸되어 생긴 흔적이었으며, 그릇의 표면이 부식되었다.

이러한 장점들이 알려지면서 세계에서 유일한 살균 위생 그릇인 방짜유기는 ‘생명의 그릇’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주석을 섞어 녹이 슬지 않도록 제작하여 사용하기 편리해지면서 최근에는 티스푼, 나이프, 포크 등까지 방짜 기법으로 제작되고 있다.

방짜는 여러 가지의 기능과 효능을 가지고 있어 식기뿐 아니라 생활용품과 타악기 등 다양한 물품도 만든다. 방짜 기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악기다. 대표적인 방짜 악기로 징을 들 수 있으며, 이 밖에도 꽹과리, 좌종, 곰보종, 운라, 바라 등 다양하다. 방짜기법으로 만든 악기는 소리가 맑고 특유하게 깊은 울림소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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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방짜유기 기능보유자
유기장 이봉주 옹은 평생 한길만을 고집하며 놋그릇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유기장이다. 유기장 가운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방짜유기 기능보유자이다. 방짜유기의 고장인 평북 납청에서 1926년 태어난 그는 1948년 월남한 이후 지금까지 방짜유기와 더불어 살아왔다.

한국전쟁 이후의 놋그릇 파동이나, 스테인리스, 알루미늄의 보급으로 인해 놋그릇이 외면당하는 어려운 시기는 공장문을 닫고 호떡장사, 공사판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유기 만드는 연장만은 버리지 않았다. 198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 대한민국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으로 지정되었다.

평생 제작, 수집한 유기 1480점을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 기증했다. 1994년 지름 161cm, 무게 98kg 세계최대 크기의 특대징을 제작했으며, 현재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경북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팔공산 IC에서 불로동 방면으로 우회전을 한 뒤 백안삼거리까지 직진한다. 백안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2km 정도 가면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이다. 4월부터 9월까지는 오전 10시 부터 오후 7시 까지, 10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10시 부터 오후 6시 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1월1일과 설 연휴,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뉴스한국


최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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