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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 관장 “백남준 정신세계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등록 2009-02-06 15:14:54 | 수정 2009-02-06 15:14:54

백남준페스티벌과 실험적 전위예술세계 조명

지난 2006년 8월 29일 공사를 시작한 백남준아트센터는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위치한다. ‘동산이 이어지는 시골의 고향마을’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던 백남준의 감흥에 따라 2003년 430여 명이 참여한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독일인 건축가 키르스텐 쉐멜(Kirsten Schmel)과 독일 베를린 KSMS 쉐멜 스탄코빅 건축사무소의 마리나 스탄코빅(Marina Stankovic)이 공동으로 디자인한 ‘매트릭스(the Matrix)’라는 작품을 기반으로 건설되어 2008년 4월 30일에 드디어 완공식을 가졌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총 대지면적 69,358m², 건축면적 1,857.21m²의 규모에 지상 3층과 지하 2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여러 겹으로 만든 거울유리 벽면에 전시 실, 비디오 보관실, 다목적 공간 등이 있다. 이로써 2001년 11월 백남준 본인과 논의를 거쳐 추진한 지 7년여 만에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상당량 작품이 소장품으로 기증되어 2006년 백남준 타계 후 그의 유산을 관리, 보전하며 예술품의 수집과 아카이브 활동에 충실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10월 8일부터 2월 5일까지 4개월간 백남준아트센터 개관을 기념하는 ‘나우 점프(NOW JUMP!)’라는 백남준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는 “말로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실제 증거를 보이라”는 그리스 속담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생각하고 여기서 뛰어보아라(Hic Rhodus, hic saltus!)”라고 외쳤던 로도스 사람들처럼 ‘비빔밥 미학’, ‘놀이정신’, ‘낙천성’ 등 백남준의 성격을 표현한 축제의 장에서 진정한 그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러한 면모를 되짚기 위해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으로 역임한 이영철(李榮哲·52) 전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를 만나보았다.지난 2008년 3월 1일에 관장을 역임했다. 자세와 남다른 각오가 있다면.
_ 우연적인 필연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관장을 맡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다만 새로 생긴 공공기관에 책임자로 가지 않을까만 생각했다. 주변에 뛰어난 예술가와 저명한 분들이 많아 도움을 주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경기문화재단 권영빈 대표가 천거해 갑작스레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외국인 관장을 초빙해 오려했다. 그만큼 이 자리가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적 인식보다 실재 한국의 여건에서 훌륭한 기관으로 성장시킬만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고려되었다. 해결사가 필요할 만큼 제약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 초대 관장으로 부임하자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 남이 한 것을 가지고 행사를 개최하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하기 쉽다. 그리고 ‘백남준 선생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마련한 곳에 와보니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설계만 독일인이 해 커튼월(Curtain Wall) 유리벽으로 되어 있고 내부 인테리어는 전무했다. 그래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서둘러서 일을 했고, 여러 분야 관계자의 도움으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이에 비해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큰일을 치를 만한 운대가 작용한다고 본다. ‘나중을 위한 연습은 없고 일할 때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따라서 일을 하면서 상황을 돌파해 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일을 평가할 수 있다. 일할 때마다 마음껏 일하는 스타일이라 일을 즐긴다고 하는 편이 적당하다. 이번에도 나는 맘먹고 열심히 즐겁게 했다. 그렇게 하면 된다고 늘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다.개인적으로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느끼는 ‘백남준’이란 작가의 이미지는.
_ 한 마디로 초인이다. 타고난 재능이 실로 뛰어나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사람이었다. 예술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궁금하다. 사업적인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을 것 같다. 혹은 훌륭한 교육가가 되었어도 혁신적인 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창의적이고 생각이 유연해서 실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는 인문주의 정신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여러 분야에 박식했고 음악을 좋아해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낡은 제도를 답습하는 것을 싫어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 왜 왔을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죽을 때까지 고민한 사람이다. 운이 좋은 것은 당대 최고 고수들을 만나 친구 관계를 형성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나우 점프’라는 주제 아래 백남준페스티벌의 의미와 역점은.
_ 백남준페스티벌의 취지는 그를 위한 백남준아트센터 개관에 있다. 10월 8일에 개관해 4개월 동안 전시를 하고 나면 이후에는 상설과 기획특별전으로 다시 재구성할 계획이다. 지난 12월 말에 경기문화재단에 들어와 일하면서 페스티벌 관련 총감독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임하게 되자 ‘어떻게 가야 하는가’ 향방을 정할 수 없었다. 일단 개관일에 맞춰 내부 전시실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면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골몰했다. 내 안에서 구상이 잘 그려지기를 원했다. ‘백남준 선생이 예술의 길을 가는 첫 출발부터 행보를 따라가면서 작품을 전시할 구상’을 정리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그의 업적보다 정신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죽어 있는 사람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정신의 불이 지펴져서 활활 타게 해야 한다는 기획으로 작가 정신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오늘의 그가 되기까지 초기의 실험과정에서 첨밀한 도약을 조명하고자 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다. 그가 어떤 존재인가. 관심은 오직 그것뿐이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묻는다면 그 핵심은 역시 정신이다.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고, 또한 그들이 왜 백남준을 잊지 못하고 있는가. 그의 독창성, 자유, 혁신의 정체가 무엇일까 조명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백남준아트센터의 정신은 여기 한국에 묶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큰 세계로 나가야 한다.한국 미술계 현실에서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_ 한국의 문화예술의 조건 속에서 백남준이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는가. 앞으로도 쉽지 않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남아 있을 뿐이다. 2006년에 작고했으니 57년을 해외에서 거주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 기간 동안 한국이 백남준에게 해준 것은 무엇인가. 유명세를 타고 일부 기업과 미술계에서 조금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그는 그 동안 홀로 서는 작업을 했다. 그것이 위대하다.

따라서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 되게 해야지, 그의 무덤이 되게 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백남준을 사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세미나와 포럼 등을 개최하며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백남준이 남겨준 정신적 유산이며 경쟁력이다. 그와 같은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현재로썬 가장 큰 숙제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작품과 연계한 인테리어 칭찬이 자자하다. 특별히 고안한 점은.
_ 건물이 지상3층 지하2층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커튼월 같은 유리벽이라 작품을 걸거나 설치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현실적 필요와 제약에 의해 뭔가 특이한 것을 만들게 되었다. 필요라는 것은 소장 작품을 상설 전시해야 한다는 것이고, 제약이라는 것은 그러기에 너무 작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미술관’ 개념으로써는 너무 규모가 작았다. 게다가 건물 자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실제 안에다 방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에 부딪힌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은 평수를 계산할 만큼 크다. 동영상이라서 그렇다. 작품 2, 3점 정도 설치하면 끝난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특별하게 해야 했다. 보통 사람들은 ‘백남준’하면 ‘비디오아트’만 생각한다. 그러나 물건(작품)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보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보고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동선을 계산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의 생각과 독창성을 봐야 한다. 그의 작품에 깃든 내용과 표현을 즐기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세계관을 엿보도록 해야 한다.

‘자유, 혁신, 세계관이 어떤가’ 질문을 던지는 아트센터가 돼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이동하는 곳이다. 무엇인가 생성되는 곳이다. 그리고 관념과 느낌을 뒷받침하기 위해 실험실과 연구센터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실을 실내 공간 전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간과 작품이 한 데 어우러져 신선한 느낌으로 흘러야 한다. 미술관이 작품을 거는 옷걸이 구실을 하면 안 된다. 심리적,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미로식 만다라 공간이다. 한옥의 개념과도 같다.백남준아트센터에 차용한 한국 전통한옥의 개념을 설명한다면.
_ 한옥은 모든 방과 건물이 서로 다 연결돼 있다. 일방적 동선을 거부하고 사방으로 뚫려 있다. 미술관도 관객이 들어오면 돌고 돌아 모든 작품을 전부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동선을 유도해야 한다.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다른 풍경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양식을 답사하며 얻은 대답이다. 그를 통해 시점에 대해 연구를 했다. 이동을 하면서 작품으로 인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도록 장치했다.

한옥은 평면적이면서도 안으로 들어가면 미로처럼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그리고 우리 전통한옥 안방에 앉아서 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듯이 비슷한 전망을 가지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인테리어를 하면서 새로



안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