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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말라, 한국의 性 격차지수는 108등이다”

등록 2009-02-24 09:19:24 | 수정 2013-08-01 17:03:25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 8년 지낸 신혜수 박사 인터뷰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8년 동안 위원으로 활동해 온 신혜수(59) 박사를 작년 12월 29일 서울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4년 임기를 두 번 중임해 꼬박 8년 동안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온 신 박사의 임기는 2008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됐다. 4년 더 해보지 않겠느냐는 외교통상부의 제안이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UN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나라로부터 여성 인권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심의하는 것이다. 각 국의 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나 부처의 대표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상대로 질문과 제안을 하고 이를 토대로 적절한 권고문을 채택한다.

신 박사는 “우리가 일하는 것이 그 나라의 여성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꼈다”고 설명하며, “세계 여성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졌다. 각 국가의 여성 차별 정도와 성 평등에 대처하는 정부 차원의 자세에 대한 현상과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인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UN 여성차별철폐협약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로 전 세계의 여성문제 전문가가 23명이 집결해 있다. 선거에서 협약 비준국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위원으로 뽑힐 수 있으며 임기는 4년이다. 신 박사가 위원을 맡기 전에는 1997년부터 김영정 전 정무장관이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근거하는 UN 여성차별철폐협약은 전 세계 여성의 차별 철폐를 위한 권리 장전과 같은 것이다. 1981년 9월에 발효된 협약으로 법적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협약은 전 세계의 여성이 각국에서 남자와 동등한 인권을 행사하되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어떤 식으로 남녀평등이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8년 12월 현재 185개국이 가입되 있으며 한국은 1984년 12월 90번째로 가입국이 됐다.

결혼하면 직장 관둔다는 포기각서 쓰던 시절 시작한 여성 운동
신 박사는 1972년 이화여자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사회 문제에 심취하면서 동 대학의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과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간사를 근무했던 그는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여성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성 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를 묻자 신 박사는 “특별한 계기가 된 차별적인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 우리 세대에는 차별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자라면서 차별적인 경험을 늘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차별이 존재했었던 때다. 다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반발을 했던 것이다”고 설명한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직장에 입사하려면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포기 각서를 써야 했다. 당시 이 포기각서 철폐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1974년 경 포기 각서가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기도 했다. 여성이 차별적 구조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여성 문제를 계속 연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 박사는 1982년 초 남편(서경석 목사)과 함께 미국행을 선택했다. 6살 난 딸과 2살짜리 아들을 시댁에 맡겨두었지만 1년 만에 아이들은 신 박사가 있는 미국으로 왔다. 그는 양육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고 학비도 벌어야 했다.

쉽지 않은 유학 환경이었던 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미국에 있는 동안 신 박사는 여성 운동을 하는 국제적인 인물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사회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 뉴저지 럿거스 대학교의 ‘센터 포 우먼스 글로벌 리더십’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학길에 오른 것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어느새 신 박사는 세계적인 여성 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서게 됐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여성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대 문제를 국제화하는 데에도 미국생활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신 박사는 “한국에 들어온 후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계속해서 여성 단체와 관련을 맺고 활동을 했다. 그러다 위안부 문제를 유엔으로까지 가져가 특별보고관을 임명해 내는 데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 형사 재판소를 설립할 때 전쟁 중에 여성에게 범한 범죄 즉 강간, 성노예, 강제 임신, 강제 불임 등을 명문화된 처벌 조항으로 명시토록 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1992년부터 신 박사는 유엔을 무대로 한 국제적인 여성 운동을 시작했다. UN 인권위원회 소위원회 참석을 시작으로 매년 인권위원회와 인권소위원회, 현대형노예제 실무회의 등에 참석해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제기하고 NGO 포럼을 조직해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국제 여론을 조성했다. 1994년에는 UN 여성지위위원회에 참석해 한국의 여성문제를 알렸고, 1998년 7월에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석해 한국 NGO의 쉐도우 보고서를 제출해 한국 여성 문제를 알렸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유엔 시스템을 익히는 동시에 정부와의 교류가 넓어졌고, 8년 전 외교부의 제안으로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의 남녀평등은 착시현상이다”
전 세계 국가의 여성 인권 현주소를 8년 동안 바라본 신 박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가 여성 인권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꼽는다. 가장 최근에 심의를 했던 핀란드에 대해 신 박사는 “내각의 60%가 여성이다. 국회의원은 42.2%가 여성으로 채워져 있다”고 언급했다. 노르웨이에 대해서는 “사기업체 임원의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약 2년 전에 법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핀란드에 ‘노르웨이도 하는 데 왜 핀란드는 못 하느냐’고 재촉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스웨덴의 경우 국회 내 여성의 비율이 47%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한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여성 인권 현주소를 묻자, 신 박사가 “놀라지 말라”고 뜸을 들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성 격차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8위다”라고 말한다.

세계경제포럼은 미국 하버드 대학교와 영국 런던대 연구진의 연구를 토대로 지난 2005년부터 성 격차 지수 보고서를 매해 발표하고 있다. 임금 부문을 포함한 경제 활동참가율(Economic Participation and Opportunity), 초·중·고등 교육율과 문맹률의 대비 수치를 포괄하는 교육 분야(Educational Attainment), 건강하게 사는 수명과 남여 성비를 포함한 보건 분야(Health and Survival), 의회에서 여성 비율을 의미하는 정치 분야 (Political Empowerment) 4개 부문을 토대로 남녀평등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매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긴 하지만 아직까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130개국 가운데 1위부터 3위까지는 신 박사가 언급한대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이 차지했다. 반면 조사 대상국 130개 국가 중 한국의 성 격차 지수 등수는 108위에 불과하다. 순위가 낮을수록 남녀 간 성 격차가 많이 벌어진다는 의미다. 위에서 언급한 4가지 분야에서 한국은 각각 110위(경제), 99위(교육), 107위(보건), 102위(정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2005년 5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도 54위에 머물렀고, 2006년에는 115개국 중에서 92위, 2007년 128개국 가운데 95위에 그쳤다.

신 박사는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여성 인권에 대해 한국에는 착시현상이 있다. 겉으로 보면 경제 개발과 함께 남녀 간 평등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남녀 간 격차가 심하다. 남녀 성 격차 지수 등수가 130개 국가 중 108위에 불과하다는 것은 경제 발전에 비해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직까지 심하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108위라는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 지수 등수가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냉엄한 잣대”라고 단언한다.

신 박사는 이어 한국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아시아에서 남여 성 격차 차이가 가장 적은 나라가 6위를 기록한 필리핀과 12위의 스리랑카다. 물론 두 나라는 한국에 비해 경제가 낙후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남여 차별은 훨씬 적다. 스리랑카는 여성 대통령과 여성 총리를 배출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가.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4%가 안 된다. 전체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마흔 한 명 정도다. 전 세계 평균이 18.2%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국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로 가면 갈수록 여성 의원의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기업체는 어떤가. 기업체 임원중에 여성 임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안 보인다. 사기업은 지리멸렬 수준이다. 관리직 5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5%이상 될까. 현실은 여성에게 굉장히 박한 것이다.”

여성 관련법,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현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어느 사회에서든 여성 차별이 나타나는 이유는 법과 제도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현실을 견인하는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언급한 두 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하지만 특히 후자의 폐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1990년대 이후 성폭력방지특별법(1993), 가정폭력방지법(1997), 남녀고용평등법 개정(1999), 성매매방지특별법(2004) 등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속속 만들어졌지만 현실까지 파고들어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지는 못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