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지구 > 북한

한준기 기관사, "만주 넘어 구라파까지 달리고 싶다"

등록 2009-06-25 22:24:38 | 수정 2009-06-26 00:24:20

"전쟁 때 기관차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 때문에 아직도 마음 아파"

1950년 12월 31일 황해도 함포역을 출발한 10호 증기기관차는 오후 5시 개성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잔류기차를 정리해 두 대의 화차에 달아 남한으로 내려보낸 한준기(83) 기관사는 오후 9시쯤 개성역을 마지막으로 출발했다.

한 시간가량 지난 10시에 장단역에 도착한 한 기관장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군수물자를 실고 온 기관차가 도착하자마자 한 미군이 와서 기관사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기차에서 내려 이만치 걸어올 즈음 한 미군차량이 들어오더니 20여 명의 미군들이 기관차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물탱크가 터져 물이 솟구치고 물을 데우던 화구가 터져 불길이 일어났다. 증기기관차 10호는 이렇게 수많은 총탄과 불길에 휩싸여 장단역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듯했다.

59년이 지난 2009년 6월 25일 10호 증기기관차는 기나긴 시간을 넘어 다시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를 훑어내고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품은 채 '평화통일의 상징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2001년 한준기 기관사는 전쟁 이후 처음으로 기관차를 다시 보았다. 이후 이날 독대다리 앞에 전시되기까지 한 기관사의 감회를 들어 보았다.

-처음으로 기관차를 보았을 때 소감이 어땠습니까?
▶기관차를 어루만지며 '너도 나만큼 늙었구나. 그 긴 세월을 견디며 통일될 날을 기다렸다니... 이제야 널 데리고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경의선이 다시 연결된다는 것도 알려줬다.

-마지막으로 기관차를 운전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1950년 12월 31일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함포역에서 서울로 후퇴했다. 개성역에 도착해 거기서 기차 차량을 정리해 기관차 두 대에 매달아 먼저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도 출발했다. 밤 10시쯤 장단역에 우리 기관차가 도착하자 미군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미 그때 북한군이 쓰지 못하게 모든 차량을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장단역에 기관차를 버리고 우리를 태우러 온 다른 기차를 이용해 후퇴했다.
당시 기관사로 전쟁에 참전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 우리 기관사들은 군수물자나 식량을 수송했다. 군인들이 진군하면 우리도 진군하고, 군인들이 후퇴하면 우리들도 후퇴했다. 그 밤에 25량을 달고 개성에서 출발해 장단역으로 달렸다. 그런데 중공군이 밀려오니까 북한주민들이 피난하기 위해 화차 지붕 위에 올라탔다가 기관차가 흔들리면 떨어져 죽기 일쑤였다. 당시 철로가에 죽은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이것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아프다.

-오늘 기관차가 복원돼 전시되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기관차가 비무장지대에 있었으니까 보존이 가능했다. 장단역이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바람에 오늘까지 보존돼 이렇게 전시가 가능했다. 이 기관차는 6.25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해 여기다 전시하는 것이다. 임진강역 다음이 장단역이다. 거기에 갔다 놓기로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여기다 설치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아픈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만약 다시 한번 이 기관차를 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도 자신있다. 정말 꼭 하고 싶다. 신의주까지 달리고 싶다. 그 다음엔 만주를 지나 구라파까지 달리고 싶다.



김옥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