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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에 즈음한 우리의 자세 ‘Keep Calm and Carry On’

등록 2010-04-20 10:49:53 | 수정 2010-04-20 10:49:53

[김갑수 칼럼]오직 총을 잡아보지 못한 자만이 함부로 총을 들라 말하는 법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 창설되었다가 2차 대전 초기에 본격적으로 그 활동을 시작한 영국 정보부 (The Ministry of Information: MOI)는 주로 국내외의 홍보 업무와 선전 활동에 집중했다. 전쟁이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정부가 집중해야 할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국민을 안심시키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일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들이 했던 수많은 일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각종 매체를 통한 프로파간다, 즉 선전활동이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포스터 제작이었다.

1939년 4월부터 시작된 포스터 고안 작업은 다양한 내부 의견을 거쳐 몇몇 공무원들에 의해 진행되어 모두 세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내용은 당시 국왕인 George 6세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몇 달 후 탄생한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Your Courage, Your Cheerfulness, Your Resolution Will Bring Us Victory’ 즉, ‘당신의 용기, 당신의 쾌활함, 당신의 결의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리라’였는데 약 80만 부가 제작되어 전국에 배포되었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유럽 대륙 대부분을 국가사회주의의 깃발아래 굴복시켜 가던 나치 독일의 위협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맞서기 위한 가장 큰 미덕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용기와 결의이며 그 어떤 순간에도 명랑 쾌활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이 포스터는 전쟁 내내 가장 대중적인 내용의 문구로 회자되며 현재까지 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준 일등 공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두 번째 포스터는 당시 독일군의 약진으로 매우 어두워진 전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듯 처음 나왔던 슬로건보다 훨씬 절박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으니 ‘Freedom is in Peril, Defend It with All Your Might’, 직역하면 ‘자유가 위태롭다. 당신의 모든 힘을 다해 방어하라’는 내용이었다. 40만 부 정도 인쇄되어 전국 각지에 부착된 이 포스터는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국가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그보다 맞서 싸워야겠다는 굳은 결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영국 정보부의 고뇌의 산물이었다.물론 이 같은 선전전과 더불어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배를 타 본 적이 없었던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거국 내각을 결성해 보수당 소속의 처칠이 수상을, 노동당 당수였던 아틀리(Attlee)가 부수상을 맡아 그들의 ‘모든 힘’을 다 해 전쟁을 이끌고 있었기에 국민 대다수가 정부에 대해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의 ‘있는 힘’을 다 국가에 바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중한 자유를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던 세 번째 포스터를 공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마지막 포스터는 일종의 대국민 최후통첩과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비관적이지만은 않았다. 당시 독일군이 영국을 침공할 계획으로 수립했던 Operation Sea Lion, 즉 ‘바다사자 작전’의 실행이 임박했음은 대부분이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었고 그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을 때 영국 전역이 히틀러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제공권 장악을 전제로 했던 이 작전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 끝내 실행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고 당연히 정반대의 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었던 마지막 세 번째 포스터 또한 공개되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약 60년이 지난 2000년 어느 날, Northumberland의 한 중고 책방에서 그 마지막 포스터의 원본이 발견되었다. 워낙 엄중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다 그 내용마저 매우 호소력이 강한 덕에 금방 여기저기 소문이 나 복사를 해 가는 고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데에는 영국 왕실이 가진 해당 포스터의 지적 소유권이 50년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 문구와 문구 위의 왕실마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Keep Calm and Carry On', 이 짧은 문장이 바로 그 마지막 포스터에 담긴 슬로건이다. 오늘날 이 문구가 새겨진 수많은 옷들과 생활용품을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그 유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직역하면 ’침착하게 하던 일 계속하라‘는 내용의 이 글이 2000년 당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단번에 끌었던 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있어도 그를 해결하기 위해 왕실과 정권의 수뇌부가 최선을 다 할 것이니 국민들은 평정을 유지하며 일상에 충실 하라는 내용 자체가 촌철살인의 짧은 몇 마디로 표현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불쑥 찾아 온 경제위기 때문이기도 했다.이는 곧 영국 국민 스스로 힘든 경제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결연한 의지로 열심히 살 것이란 다짐의 의미이기도 한데 최근 들어 192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공황을 만난 영국민들 사이에 다시 이 포스터가 회자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여기저기 그 내용이 새겨진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 사람들과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모자달린 후드 티에서도 똑같은 모양의 포스터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전쟁이란 것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순 없으나 한 나라가 겪었던 전쟁치고 그보다 더 참담할 수 없었던 우리의 한국전을 잠시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후 다양한 논리로 분단을 고착화시키던 일부 세력들이 우리의 능력과 무관하게 툭하면 허무맹랑한 북진통일론을 외쳤던 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승만 정권이 연일 무력을 통한 북진통일을 외쳤고 그의 수하였던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은 당장 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으니 말이다. 허나, 막상 전쟁이 나고 3일 후 그들은 안심하라는 말만 반복하다 서울시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먼저 한강을 건넌 뒤 수많은 시민들이 다리 위에 있었음에도 한강철교를 폭파했다. 국가 재난에 즈음한 기본 매뉴얼조차 수립하지 않은 채 무책임한 선동만 일삼던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최근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보수 언론과 여당 일각에서 연일 북한 공격에 의한 침몰을 기정사실화 하고 전시상황이 임박했다거나 무력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등의 무책임한 주장을 연일 내뱉고 있는 것은 그런 우리 국민만의 ‘트라우마(trauma)’를 자극하는 듯해 매우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또한 이와 같은 주장과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은 채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대체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 정확한 것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그런 주장이 난무한다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는 걸 전제로 해도 아군의 군함이 적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데 어디서 누가 쐈는지 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새떼를 향해 대포를 쏘고는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군으로 무슨 승리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 더불어 그런 선동을 하는 당 지도부와 보수언론 사주의 가족들 중 상당수가 대체 무슨 이유로 국민 평균을 훨씬 웃도는 군 면제 비율을 보여 주는지, 막상 전시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들은 또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같은 주장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 그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더욱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총을 쏴 본 자만이 총의 무서움을 아는 법이며 전쟁은, 특히 현대전은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즐기는 게임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진대, 툭하면 전쟁불사 운운하는 이들이 과연 전쟁의 참상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의 안녕을 직간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절대 지금과 같은 끝 모를 불안감 조성과 호전적인 부추김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비록 영국 정보부의 매뉴얼에서와 같은 세 번째 마지막 단계는 아니지만 오히려 ‘Keep Calm and Carry On’이라고 국민들을 안정시키려 하는 게 상식 아닐까. 갑자기 멀쩡했던 신발의 끈이 떨어졌는데 왜 그랬는지 이유를 밝히거나 새롭게 끈을 묶을 생각도 하지 않고 돌격 앞으로만 외쳤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부와 군 수뇌부는 이번처럼 어디 가서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황을 하루 빨리 개선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온갖 정보를 통제한 채 권위주의 정부 시절 애용했던 공안정국 조성이나 공포 분위기 조장을 위해 사용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국민들이 언제 어떤 식으로 자유가 위기에 처했으니 모든 힘을 다해 사수하자는 (‘Freedom is in peril, Defend it with all your might)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방방곡곡에 붙이고 다닐지 모른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갑수 시사평론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