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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일하러 왔지만 노예는 아냐” 외국인 노동자들, '고용허가제' 폐지 주장

등록 2017-08-14 10:01:11 | 수정 2017-08-14 14:44:23

“사용자에게 모든 권한 주면 노동자는 노예가 될 수밖에 없어”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 앞에서 노동계가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했다. (뉴스한국)
6일 충북 충주의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던 27살 네팔 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남) 씨가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레스터 씨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라며,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스레스터 씨의 죽음을 계기로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고용허가제는 2004년 8월 시행해 올해로 14년째를 맞는 제도다.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허가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국내 근로자와 동등하게 한다는 취지이지만 정작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 제도 때문에 사업주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토로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업장 이동 제한 규정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3년 동안 최대 3번 회사를 옮길 수 있지만 이는 사업주가 승인하거나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등의 조건을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차별을 당하거나 임금을 받지 못해도 사업주의 승인 없이는 오도가도 할 수 없다.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더라도 3개월 이내에 다른 사업장에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본국으로 쫓겨난다. 스레스터 씨의 유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노동계는 스레스터 씨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 연일 기자회견을 열며 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해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인 우다야 라이(44·남)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 중소·영세기업과 농장들이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아주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이런 실상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이 제도 때문에 노예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자로서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죽지 않도록 해달라. 사람답게 한국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지 한 달 반 만에 고용허가제의 폐단을 몸으로 체험했다는 니샤(26·여) 씨는 “지난달 25일 해고를 당한 후 20일 넘게 사장이 사업장 이동을 해주지 않고 있다. 사장은 사업주 승인 없이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식의 요구를 한다”고 호소하며,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나는 이 나라에 일하러 왔지만 노예는 아니다”고 말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자본가에게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제도로 최소한의 노동권과 인간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노예로 살게 한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죽게 하는 고용허가제는 폐지해야 한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는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리며 인권유린의 온상이었던 산업연수생제도에 비해 고용허가제가 근로기준법 등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선진적인 제도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본질은 강제노동”이라며,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이주노동자 착취 제도이자 죽음의 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근본적으로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스레스터 씨가 목숨을 끊은 이튿날 경기도 화성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네팔 노동자 다벅 싱(25·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주공동행동에 따르면 싱 씨는 한국에 온 지 1년 4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생전에 ‘휴가도 없고 사업장 변경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지인에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서에 “저는 이제 없습니다. 저를 누군가 데리고 갔습니다. 꿈이 많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고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