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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한국과 상관 없는 비핵화 조치…美, 경제적 보상’ 최악의 핵 협상 시나리오

등록 2019-01-23 12:31:40 | 수정 2019-01-23 17:47:49

신범철, "트럼프 정부 북한에 끌려가" 자유한국당 핵포럼 세미나서 경고
우정엽, “트럼프가 아무런 합의 하지 않아야 한국에 유리”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친서를 공개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AP=뉴시스)
내달 말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형식적 대화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핵 협상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비핵화 약속을 담보로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주는 최악의 핵 협상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핵포럼 9차 세미나 ‘북미 핵협상 전망과 한국의 대응방안’에서 미국이 북한에 끌려가는 비핵화 협상을 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 같이 분석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내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북한과 대화를 잘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북한에 끌려가고 있다는 게 신 센터장의 판단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 미국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은 점은 물론 북한 정보기관 수장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협상 전면에 나서자 이를 의식해 그간 외교라인이 맡았던 분야에 정보라인을 투입한 게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신 센터장은 미국이 ‘동결→감축→폐기’ 순의 단계적 비핵화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분석하며, 북한 핵 능력의 구체적인 신고·검증의 현실적인 제약을 인식해 핵 활동을 동결하고 북한에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추정했다.

신 센터장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예상 시나리오는 노딜(No deal)·스몰딜(Small deal)·빅딜(Big deal)·배드딜(Bad dael) 4가지이지만 이 가운데 스몰딜과 배드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딜은 미국 내 여론이 나빠지거나 북한이 내놓은 카드가 신통치 않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판을 깨는 시나리오다. 지난해에도 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5월 24일 북한과 중국이 밀착한다며 퇴짜를 놓은 적이 있다. 다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잘못된 협상의 덫에 빠진데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국내 정치 탈출구를 찾고 있는 만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가능성이 적다.

스몰딜은 북한과 미국 모두 양보는 하지 않고 단지 대화를 이어가려는 목적으로 형식적 합의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면 미국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식이다. 이는 접점을 찾기 쉽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비핵화 자체는 불가능해진다. 만약 북한이 이를 수용한다면 시간을 벌어 핵보유 굳히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가 늦어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 자체도 성과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이 주최한 '북미 핵협상 전망과 한국의 대응 방안'이란 제목의 세미나가 열렸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과 그 오른쪽에 있는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뉴스한국)
가장 좋은 합의는 빅딜이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하고 미국이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수순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의 신고·검증(시료 채취 포함)·폐기를 수용하면 미국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상응 조치를 제공한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이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가장 우려하는 건 배드딜이다. 북한이 한국에게 무의미한 비핵화 조치를 하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여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식으로 합의하는 걸 말한다. 예를 들면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면 미국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도록 한다. 미국이 자국에 도달하는 ICBM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협상을 합의한다는 건데 그러면 북한 ICBM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미국 동맹국들의 위험은 나몰라라하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으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는 합의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서 멀어지는 것은 물론 북한이 핵 보유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배드딜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직거래를 희망할 전망이다.

신 센터장은 “북핵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고 제재를 완화하면 궁극적으로 핵보유로 갈 것”이라며, “현재도 못 받아내는 비핵화 조치를 나중에 받아내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스몰딜이나 배브딜을 대비해 전술핵 배치나 핵 보유 등을 포함한 대안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참석한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대화할 시간이 짧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렇다 할 합의 자체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고 내다보며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북한·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말하는 ‘북한 비핵화’ 개념을 확고하게 정리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치고 이를 이루는 과정은 실무협상단에 맡기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세미나에 잠깐 들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당 입장은 북미 정상회담이 궁극적인 핵 폐기를 목표로 해야지 쇼잉(보여주기식)하는 어정쩡한 이상한 모양으로 마무리 해서는 안 된다"며,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입장에서 방위비 협상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미단을 구성해 미국 조야에 '한미 동맹이 중요하고 북한 비핵화가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목소리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내달 열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세미나 인사말에서 자신이 핵 개발론자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전술핵 재배치 이상의 핵 개발 논의를 심층적으로 진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 개발을 논의하는 게 외교적으로 부담일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미국과 중국에 영향을 줌으로써 한국이 전략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전당대회 출마 예정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진태 의원, 안상수 의원도 참석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