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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장르의 발명이다, 창극 ‘시’

등록 2019-01-24 17:17:06 | 수정 2019-01-24 17:20:00

국립창극단 ‘시’. (국립극장 제공=뉴시스)
“안녕~ 안녕~.”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 묻거나 바라는 감탄사 ‘안녕’이 이렇게 여운 짙은 단어였던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칠레의 국민시인’으로 통하는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시 ‘작별들’에서 시어를 발췌해 작창한 ‘안녕’은 소리꾼 유태평양(27)의 목소리를 타고 위안을 안겼다.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이 26일까지 장충동 하늘극장에서 선보이는 신(新)창극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시’(詩·Poetry)는 제명 그대로 작품 자체가 시처럼 들리고 보인다.

2015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받은 젊은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가 박지혜(34)가 유태평양(27)과 또 다른 소리꾼 장서윤(28) 그리고 양손프로젝트에 소속된 연극배우 양종욱(40)·양조아(36)와 함께 만들었다.

창극의 새로운 서사와 이미지를 보여준다. 시의 작법, 화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비결.

양손프로젝트와 작업해온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가 꾸민 흰색 모노톤 무대는 화려한 파티가 끝난 뒤 허무함이 배인 공간이다. 네루다 시와 이 창극이 품고 있는 주제가 녹아 있다.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등으로 유명한 네루다의 시는 ‘탄생에서 소멸까지 삶이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찰나’를 노래한다. 어떤 것들이 피어나고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을 바라봤을 때 허무함도 들지만, 그 허무함은 결국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박 연출의 판단이다. 이를 압축한 것이 파티이고, 그런 파티는 결국 삶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서사가 아닌 파편화된 시 형식으로 들려주는 일은, 관객을 이해보다 감각에 더 예민해지게 만든다. 두 소리꾼, 두 배우는 특정한 내러티브에 놓여 있지 않다. 원색 의상을 입고, 자신이 설정해놓은 세계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든 동작을 하고 노래를 하며 시를 읊는다.

국립창극단 ‘시’. (국립극장 제공=뉴시스)
유태평양과 장서윤의 애절한 소리, 낭독극에 익숙한 양종욱과 양조아의 낭독도 감각의 촉수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되지만, 발군은 작창감독으로도 참여한 이자람(40)의 음악이다.

2017년 고선웅이 연출한 국립창극단 창극 ‘흥보씨’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진일보된 음악을 들려준 이 감독은 일렉 소리를 장착한 이번 ‘시’에서도 새로운 도회적 창극 음악이 무엇인지를 증명한다. 이 황홀한 소리 풍경과 이 경치에 스며드는 은은한 빛이 가시지 않은 흥분, 농도 짙은 여운을 피어오르게 하며 삶의 다양한 순간을 목도하게 만든다.

기승전결 없이 삶, 자연, 사랑, 개 등이 출몰한다. 시는 해석을 통한 이해가 아니다. 느낌으로서 깨닫는 일이다. 맥락 없이 등장하는 소재들이 낯설 법도 한데 삶을 파고드는 순간이 있다. 국립창극단 ‘시’는 창극이 새로운 장르와 결합해서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포엠 창극’이라는 새 장르를 만들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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