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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불안장애‧불면증‧자살 위험…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 가정서 일어나는 일

등록 2019-03-14 12:24:00 | 수정 2019-03-14 15:11:45

사회적참사특조위, 피해 가정 100가구 실태조사 결과 발표
신체‧정신 피해 폭넓게 ‘가습기살균제증후군’ 인정해야

14일 오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서울 중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이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위험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에서 정부 역할에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14일 오전 10시 서울시 소공로 특조위 대회의실에서 ‘2018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조위가 한국역학회에 의뢰해 지난해 10월부터 그해 12월까지 3개월 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 1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실태조사다.

2018년 10월 23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신청‧판정 완료 4127가구(5253명) 가운데 100가구(사망 10가구‧폐 이식 7가구‧1~2단계 피해 판정 25가구‧3단계 29가구‧4단계 29가구)를 무작위로 선택했다. 피해 가정을 방문해 심층조사했고 피해자들의 신체‧정신, 사회경제‧심리적 피해를 참사 전후와 비교해 총체적으로 파악했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상당히 심각하다. 건강피해의 경우 폐질환을 넘어 여러 신체 장기에서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성인 피해자는 비염‧비질환(63.5%)과 폐질환(53.6%)에 이어 결막염‧안질환(48.8%)과 위염‧궤양(42.4%), 피부질환(39.2%) 및 심혈관계(29.6%) 질환도 나타났다. 간질 등 신경계질환과 당뇨 등 내분비계 질환 및 발달장애 등이 악화하거나 새로 발생했다.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경우 비염‧비질환(80.8%), 폐질환(76.7%), 결막염‧안과질환(76.7%), 피부염‧피부질환(43.8%), 자폐증‧주의력결핍 행동장애‧발달장애(9.6%)가 새로 발생했다.

성인 피해자는 일반인에 비해 자살 생각을 1.5배 많이 하고 자살 시도는 4.5배에 이른다. 정신건강 문제를 살펴보니 우울‧의욕저하(57.5%), 죄책감‧자책(55.1%), 불안‧긴장(54.3%) 등이 참사 이후 새로 발생했다. 우울증 평가를 해보니 '중증도 이상의 우울고위험군' 또는 '자살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참사 이후 새로 진단받은 정신질환은 수면장애 (18.9%), 우울증(13.4%), 불안장애(7.9%)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심리‧사회적 피해도 심각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간과했던 대목이다. 특조위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의학‧신체 질환에 국한하지 않고 특정 단계나 기준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나타났다. 생애주기와 가족관계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고 피해는 누적하며 심화한다고 나타났다. 특히 피해자의 사회적 고립 위험 가능성도 드러났다. 피해 가정의 사회적 연결망 밀도는 0.3으로 일반 국민(0.5)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는 잘 아는 소수의 가까운 사람에게 의지하는 정도가 일반 국민보다 더 높다는 뜻이다.

성인 피해자의 66.6%는 지속되는 만성적 울분 상태였고 이 가운데 절반(전체의 33.3%)이 중증도 이상의 심각한 울분 상태였다. 외상후울분장애 척도로 측정한 점수의 평균이 1.6~2.5 사이일 경우 ‘지속되는 만성적 울분’ 상태이고 2.5 이상이면 중증도 이상을 뜻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행 조사와 비교하면 중증도 이상의 경우 2.27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심각한 울분 집단의 정신건강 점수가 비교 집단보다 상당히 낮았고 자살 생각‧시도에서 유의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울분의 자기파괴적 영향’을 우려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심각한 울분 집단에 속하는 가구 대표 30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이 울분은 현재 피해보상과 대응 체제가 양산하는 ‘사회적 울분’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특조위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경제적 피해 비용을 100가구 기준 125억 8000만 원~539억 8300만 원으로 추산했다. 기타 후생 상실 비용과 질환에 따른 이환‧조기 사망‧고통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피해 비용의 범위가 큰 이유는 사망의 생명 가치 산정 기준 때문이다.

피해별로 살펴보면 사망 가구는 29억 6700만 원~443억 7000만 원이며 폐이식 가구의 질병 피해비용은 21억 7600만 원이다. 1‧2단계 피해 판정 가구의 총 질병 피해비용은 18억 4300만 원, 3‧4단계 피해 판정 가구의 총 질병 피해비용은 53억 6600만 원이다. 이는 자기기입식 설문조사로 파악한 만큼 과소 또는 과대 평가 가능성이 있다. 반면 조사에 응한 100가구 가운데 정부 구제 급여를 받은 피해자는 28명이며 평균 1400만 원 수준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이후 피해 판정을 통보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1년에 달했다. 6개월~1년이 걸렸다는 응답은 35%, 1~2년은 31%다. 6개월에서 2년까지는 총 66%로 가장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82.3%가 피해판정결과 통보까지 걸린 시간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판정결과 통보 시 결과 설명이 ‘불충분했다’가 38.5%로 가장 많았고, ‘근거와 설명이 제공되지 않았다(31.3%)’‧‘근거와 설명이 제공되었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26%)’ 순이었다.

특조위는 “정부의 건강 피해 인정 질환과 실제 피해자들이 진단받은 질환의 차이가 큰 만큼 정부의 개별 질병 인정 여부를 ‘가습기살균증후군’으로 정의해 폭넓게 피해를 인정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등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증 울분 집단 피해자들이 피해 경험을 ‘고통’으로 인식하고 여전히 고통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정신건강 서비스와 개인회복프로그램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