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경제

사상 첫 블랙홀 관측 성공…우주 비밀 밝히는 데 전 세계가 뭉쳤다

등록 2019-04-11 10:20:00 | 수정 2019-04-11 12:25:31

아이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궁극적인 증명
돌먼, “전 세계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협력이 이룬 이례적인 과학적 성과”

전 세계 8개의 망원경을 연결한 사건지평선망원경.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10일 오후 10시(한국시각) 세계 최초로 초대질량 블랙홀이 인류에 모습을 드러냈다. 11일 오전 한국천문연구원은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진이 전 세계 8개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사건지평선망원경으로 사상 최초로 실제 블랙홀 영상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 세계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협력해 이룬 이례적인 과학적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아이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의 궁극적 증명”
블랙홀은 극단적으로 압축된 천체로, 매우 작은 공간 내에 엄청난 질량을 포함하고 있다. 지구 질량의 블랙홀 지름은 탁구공의 절반보다도 작다. 이런 천체의 존재는 시공간을 휘게 하고 주변 물질들을 초고온으로 가열해 주변 환경에 극단적인 영향을 준다.

‘블랙홀’이라 하면 대개 검은 구멍을 떠올린다. 블랙홀을 직접 본 사람은 없고 블랙홀을 직접 볼 수도 없다. 블랙홀은 빛조차 흡수해 버려 직접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상이나 논문에서 봤던 블랙홀의 이미지는 모두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상상에 불과하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은 전 세계에 산재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 영상을 포착하는 국제 협력 기획이자 이 가상 망원경의 이름이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지대를 뜻하기도 한다.

한국천문연은 “사건지평선망원경이 아이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처음으로 검증한 역사적인 실험의 100주년이 되는 올해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인 천체들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 박사는 “이번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이며,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블랙홀 관측 결과는 10일 미국 천제물리학저널 레터스 특별판에 6편의 논문으로 실렸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이 발표한 영상에는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은하 M87의 중심부에 자리한 블랙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한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지니고 있으며 사건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도 휘어지게 만든다. 이 때문에 블랙홀 뒤편에 있는 밝은 천체나 블랙홀 주변에서 내뿜는 빛은 왜곡돼 블랙홀 주위를 휘감는다. 왜곡된 빛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블랙홀을 비춰 블랙홀의 윤곽이 드러나게 하는데 이 윤곽을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초대질량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 질량의 수십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가장 큰 유형의 블랙홀이다. 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은하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고 추정한다. 다만 초대질량 블랙홀들은 상대적으로는 크기가 작은 천체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관측이 불가능했다.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그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무거운 블랙홀일수록 그 그림자도 더 커진다. M87의 블랙홀은 그 거대한 질량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 덕분에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블랙홀들의 그림자 중 하나로 예측됐고, 따라서 사건지평선망원경의 완벽한 관측 대상이 됐다.

연구진은 여러 번의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 즉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M87의 사건지평선이 약 400억 km에 걸쳐 드리워진 블랙홀의 그림자보다 2.5배가량 더 작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건지평선망원경 과학이사회 위원장인 하이노 팔케 네덜란드 래드버드 대학 교수는 “만약 블랙홀이 밝게 빛나는 가스로 이루어진 원반 형태의 지역에 담겨 있다면 블랙홀이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지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지만 우리가 이전에는 전혀 직접적으로 보지 못했다”며 “사건지평선에서 빛이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으로 휘어져서 생긴 이 그림자는 이 매혹적인 천체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M87 블랙홀의 어마어마한 질량을 측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은 1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에 관측한 은하 M87 중심의 블랙홀 영상을 얻었다고 밝혔다. (사건지평선망원경 홈페이지 갈무리=뉴시스)
우주의 비밀 밝히는 데 전 세계가 뭉쳤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은 블랙홀을 관측하려 전 세계의 전파망원경 8개를 연결해 이전에 없던 높은 민감도와 분해능을 지닌 지구 규모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한국천문연은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1.3mm 파장 대역에서 하나의 거대한 지구 규모의 망원경을 구동했다”며, “사건지평선망원경의 공간분해능은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번 블랙홀 관측을 두고 사건지평선만원경 기획 총괄 단장인 셰퍼트 돌먼 하버드 스미스소니안 천체물리센터 박사는 “우리는 인류에게 최초로 블랙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고,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진 이례적인 과학적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을 이루어냈다. 지난 수십 년간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 성능의 전파망원경들을 서로 연결해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에 새로운 장을 함께 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을 구성한 8개 전파망원경은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미터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이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의 블랙홀 관측은 2017년 4월 5일부터 그달 14일까지 6개 대륙에서 이뤄졌다.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의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얻었다. 사건지평선망원경의 원본 정보값을 최종 영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분석은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연구소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헤이스택 관측소에 있는 특화 슈퍼컴퓨터를 활용했다.

사건지평선망원경 연구진에 따르면 앞으로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 천문대와 그린란드 망원경 그리고 킷픽 망원경이 참여한다. 이를 통해 관측 민감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번 블랙홀 관측에는 한국도 참여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연구자 등 8명이 동아시아관측소(EAO) 산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과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의 협력 구성원으로서 사건지평선망원경 기획에 참여했으며, 한국이 운영하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의 관측 결과가 본 연구에 쓰였다.

한편, 일반상대성이론은 알버트 아이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이론이다.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그 주변 시공간은 그 물체의 질량의 영향을 받아 휘어지는데 질량이 크면 클수록 주변 시공간이 더 많이 휘어져 더 큰 곡률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100년 전인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과 두 탐험대가 아프리카 해안의 프린시페섬과 브라질의 소브랄로 원정을 떠나 개기일식을 관측했다.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 빛이 1.61초 휘는 모습을 관측했고, 이로써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사건지평선망원경은 우리가 이해하는 중력을 다시 한 번 검증하려 팀 구성원들을 세계 각지의 가장 높고 고립된 전파 시설로 보냈고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글은 한국천문연구원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