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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낙태죄 폐지법안은 헌재 결정보다 후퇴했다”

등록 2019-04-17 12:26:49 | 수정 2019-04-17 16:02:04

모낙폐, “여전히 임신 중지를 법의 틀에 따라 제한하고 징벌해 문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5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후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낙태죄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낙태죄 폐지 여론을 이끌어 온 관련 시민단체는 물론 당 내에서도 이 대표가 헌재 결정보다 훨씬 후퇴한 법안을 내놨다고 질타했다.

이 대표는 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 법안(형법·모자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대표 발의하고 추혜선‧윤소하‧심상정‧김종대‧여영국 정의당 의원과 박주현‧채이배‧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손혜원 무소속 의원 이렇게 9명이 발의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한다”며, “개정안에서 현행 형법의 ‘낙태죄’를 폐지한다. 형법 27장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꾸고 기존 자기낙태죄(형법 269조)와 ‘의사 낙태죄(형법 270조 1항)를 삭제한다”고 밝혔다.

이어 “모자보건법의 경우 헌재 결정의 취지대로 임신 중기인 22주까지는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고, 임신 14주까지는 임신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임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모자보건법에서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한 조항은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는 낡은 사고의 산물이므로 삭제하고, ‘성폭력 범죄 행위로 인하여 임신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16일 성명을 내고,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여전히 임신중지를 법의 틀에 따라 ‘제한’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라고 질타했다. 모낙폐는 성과재생산포럼‧사회진보연대‧한국여성민우회‧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3개 단체가 2017년 결성한 연대체로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서명운동‧캠페인‧집회 등 다양한 형태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이끌어왔다. 아래는 모낙폐 성명 중 일부다.

“(이정미 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를 경과한 임신중지의 경우 △태아의 건강 △성폭력 △근친상간 △사회‧경제적 곤란함이나 △임신의 유지로 인한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을 또다시 증명하고 허락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임신 22주 이후에는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 외에는 임신 당사자가 임신 후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쳐온 개인적‧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할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의료인이나 임신중지를 도운 시술자에게 과태료(의사 등 500만 원‧비의료인 200만 원)가 부과된다. 이와 같은 법안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 취지에도 거스르는 방향일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모낙폐를 비롯하여 수많은 여성이 요구해 온 방향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모낙폐는 “그동안 우리는 여성의 임신중지에는 그 어떤 허락도 처벌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왔다”며, “특정한 (임신) 주 수를 우선적 기준으로 검토하는 구시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해 왔으며 여성의 임신중지를 어떻게 제한하는 것인가가 아니라 건강과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중심적으로 입법 방향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도 같은 날 “이 의원의 낙태죄 폐지 법안 전면 수정을 위해 열심히 싸울 것을 다짐한다”며 반대 논평을 냈다. 모임은 “이 의원 법안은 ‘임신한 여성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기간 내에도 국가가 낙태를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여 줄 뿐이라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헌재 결정문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모임은 “14주까지는 임신부의 요청만으로 가능한 것이 22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가능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인공 임신 중절로 인한 모성 사망의 상대적 위험도는 임신 8주 이후 각각 2주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 15주에서 22주 사이의 인공 임신 중절로 인한 위험도 증가가 사회‧경제적 사유 도입의 이유라면 이는 국가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성이 아닌 다른 주체가 대신 판단할 수 있다는 착각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17일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시 “이 의원을 비롯한 9명의 국회의원들은 ‘최초 발의자’라는 관심을 받기 위해 변화를 담지 못한 낙태죄 관련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실제 내용은 낙태죄 폐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 의원과 법안 발의에 동의한 의원들은 다른 국가에서 낙태 허용 시기와 사유의 제한이 남아 있는 점을 합리적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모방한 법안 발의를 했다”며, “이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진행되어온 낙태죄 폐지 논의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길 바란다. 이러한 법안발의는 역사를 되돌리려는 행보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