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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美 군사정보관 “전두환 방문 목적은 사살 명령…합리적 추정”

등록 2019-05-13 19:52:36 | 수정 2019-05-13 21:59:42

국회서 특별 기자회견…김용장 전 미군 501정부여단 방첩부대 군사정보관 증언
“시민 행세한 사복군인 실제로 존재…거지처럼 넝마 걸친 사람도 있어”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도 기자회견 참석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당시 미 육군 방첩부대(501 정보여단)의 김용장 군사정보관(오른쪽)과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이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 였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광주에 내려가 사살명령을 하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용장 전 미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은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2소회의실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제목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오는 18일은 5.18 39주기다.

김 전 정보관은 미국 육군 501 정보여단 광주파견대에서 군사정보관으로 25년 동안 재직했다. 501정보여단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 육군 방첩부대로 주한미군과는 상관이 없다. 그는 광주에서 수집해 보고한 40건의 첩보 중 5건이 백악관까지 올라갔고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이 가운데 3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광주에는 미국 국무성이나 CIA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김 전 정보관의 사무실은 광주 1전투비행장에 있었고, 유일한 한국인인 그를 포함해 4명이 근무했다.

“21일 정오께 K57에 전두환이 광주에 와 회의…오후 1시 도청 앞 사살”
김 전 정보관은 “39년 동안 제 마음에는 아주 무거운 십자가 하나가 있었다. 아내에게조차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사항”이라며 전 전 대통령과 관련한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전두환은 (1980년 5월) 21일 점심 12시를 전후로 K57(광주 1전투비행장‧광주비행장)에 왔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당시 헬기를 타고 왔고 오자마자 K57 비행단장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 참석자는 정호용 특전사령관‧이재우 505보안부대장과 불상자 1명 등 4명가량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기까지가 제가 보고한 내용이다.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저도 모른다”면서도 “하지만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사살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저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바로 사살명령이라고 본다. 그 회의에서 사살명령이 전달됐다고 믿는다. 이건 저의 합리적 추정”이라고 말했다. 발포는 상대방이 총격을 가했을 때 방어하는 대응 개념이라는 점에서 살상명령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가발 쓰고 넝마 걸친 20~30대 사복 군인 광주 투입 ‘남한특수군’”
김 전 정보관은 당시 수집해 보고한 첩보 중에는 시민 행세를 한 사복 군인을 언급한 내용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을 ‘편의대’ 또는 ‘남한 특수군’이라고 불렀다.

김 전 정보관은 “이들은 5월 20일께 K57 광주비행장으로 왔다. 성남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약 30~40명이 왔으며 K57 격납고 안에 주둔하면서 민간인 버스를 타고 광주 시내로 침투했다”고 말했다. 정보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김 전 정보관은 “첩보를 입수한 후 격납고로 찾아가 제 눈으로 재차 확인했다. 나이는 20~30대에 짧은 머리였고 일부는 가발을 썼으며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었다. 그중에는 거지처럼 넝마를 걸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당시 미 육군 방첩부대(501 정보여단)의 김용장 군사정보관(오른쪽)과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이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 였다'고 주장했다. (뉴스한국)
이들을 군인으로 판단한 근거를 묻는 질문에 김 전 정보관은 “전부 젊은 사람들이었고 얼굴이나 움직임으로 봐서 군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격납고에 들어가 우연찮게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이 있어 30m 정도 거리에서 얼굴을 직접 목격했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광주로 보낸 것은 전두환의 보안사령부이고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서의남 505대공과장이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K57에 출입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합리적 추정이라고 밝힌 후 “북한특수군이 했다는 방화‧총격‧장갑자 탈취 등 일반 시민이 했다고 보기 어려운 극렬 행위들을 남한특수군이 선봉에서 시민들을 유도하거나 직접 벌인 소행이라고 추정한다”며 이들이 시민으로 위장해 ‘경상도에서 온 군인이 광주시민 다 죽인다’‧‘북한 게릴라 군이 침투했다’ 등 유언비어를 확산하는 공작을 벌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든 후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전두환의 보안사령부가 고도의 공작을 펼친 것”이라며, “이들의 실체를 밝힌다면 광주의 모둔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정보관은 특히 지만원 씨가 주장하는 ‘북한군 600명 개입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는 미국의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군 침투설은 전두환이 만든 허위 날조”라며, “당시 한반도 상공에는 고고도와 저고도에 2대의 군사첩보위성이 떠 있었고 특히 북한과 광주를 집중 관찰했으며 조기경보기와 AWACS(공중경보와 통제체계)도 한반도를 정밀 감시해 사진 촬영과 통신 감청을 실시간했다”고 말했다.

“5.11연구회, 진시황제 분서갱유 해당할 정도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허장환 전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은 무려 39년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원인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5.18 때 수사관으로 일했지만 1988년 5.18 청문회에서 양심선언을 한 인물이다.

허 전 특명부장은 5.18 당시에 간첩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우려가 탓에 가매장한 시신을 다시 발굴해 지문을 확인했고 이후 광주통합병원에서 화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일러를 개조해 화장체계를 만들었고 해당 병원의 굴뚝 크기는 보일러 용량을 뛰어 넘었다”며, 시신을 태우다 용량이 차면 (남은 시신을) 김해공항으로 빼서 바다에 투기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은 허 전 특명부장에게 ‘5.11 연구회’가 무엇인지 물었다. 허 전 특명부장은 “5.18 전 과정을 희석해 자기들 업적으로 만들어 책자를 펴내야 하는 상황에서 초반 실수를 바로 잡겠다며 변조작업에 들어갔고 법조인들을 초빙하기도 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해당할 정도로 변조를 했는데 이런 변조 행위가 39년 동안 5.18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애초 5.11대책분석반이 등장했고 이어 5.11 연구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5월 11일에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