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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시행령 제대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등록 2019-06-14 11:13:06 | 수정 2019-06-14 17:04:38

산재‧재난 참사 피해 가족 3차 공동 기자회견 청와대 앞에서 열어
“추락‧폭발‧매몰‧중독‧질식…매년 2300여 명 노동자 죽음 방치할텐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산재 및 재난 참사 피해 가족들이 3차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뉴스한국)
“간단하다. 지금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시행령‧시행규칙을 용균이가 살아 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용했을 때 용균이가 살았을지 죽었을지 그거 하나만 놓고 보면 산안법이 왜 김용균법이 아닌지 왜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닌지 알 수 있다.(유경근 세월호참사 피해자 유예은 아버지‧전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산재 및 재난 참사 피해 가족들이 세 번째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시행령을 제대로 다시 만들라”며 '원청의 책임 강화'와 '노동자 보호 범위 확대'를 촉구했다.

김용균법은 충남 태안에 있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24‧남) 씨가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석탄운송설비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은 후 만들어진 법이다. 당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 씨의 비참한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절박하게 호소하고 많은 국민이 힘을 모으면서 같은 달 28일 국회는 28년 만에 전면 개정한 산안법을 의결했다. 전부개정한 산안법을 ‘김용균법’으로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문제는 김용균법이 생기긴 했지만 정작 김용균 씨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고인의 일터가 도급금지 대상에 들지 않아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 없고, 노동자를 죽게 한 기업주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지워졌다. 그나마 피해자 가족들은 부족한 부분을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올해 4월 22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예고안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예고기간은 이달 3일로 끝났고, 정부는 각계의 의견서를 토대로 조만간 개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피해 가족들은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에서, 고인이 하던 발전소 업무는 도급금지 대상에서 빠진데다 승인대상에도 들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그 위험한 일이 여전히 하청노동자의 몫이 된 것이다. 이 하위법령 개정안으로 ‘위험의 외주화’ 사슬이 더욱 단단하게 노동자들의 손과 발을 옥죄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발전소뿐만 아니라 조선소‧철도‧건설 현장 등 산재 사망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곳의 업무도 도급 승인 대상에 넣지 않았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독성화학물질 중에서 불산‧황산‧염산‧질산 4개만 도급 승인 대상에 포함시켰는데 그마저도 일상적인 유지보수 업무는 제외했다.

피해 가족들은 “개정 하위법령이 안전의 원청 책임을 폭넓게 면제했다. 사망사고가 빈발하는 건설현장에서 사고 다발 장비인 굴삭기‧덤프‧이동식 크레인 등 건설기계에 원청은 책임을 지지 않게 됐고 과로사와 자살이 이어지는 방송현장과 IT(정보통신) 업종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중대 재해 발생 현장의 작업중지 명령을 졸속으로 해제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 참여를 보장해 사측이 안전조치를 완료한 후 해제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산재 피해 가족과 대리인에게 화학물질의 위험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하지 않았다. 국회와 정부가 ‘김용균법’이라고 내놓은 산안법과 하위법령 모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 구멍으로 노동자들의 생명이 허망하게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산재 및 재난 참사 피해 가족들이 3차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피해 가족들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며 '대통령께 드리는 글'과 의견서를 맡겼다. (뉴스한국)
이날 기자회견에서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를 맡은 김훈 작가는 “매년 2300명 이상이 노동 현장에서 죽어나간다. 추락하고 폭발하고 매몰하고 중독하고 질식해 몸이 터지고 흩어진다”며,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무수한 죽음을 경영을 이유로 합리화하는 건 인간이길 포기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건 우리 국민이 원하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며, “대통령과 국회‧행정부는 날마다 벌어지는 무수한 죽음을 방치하는 것인가. 그러면 내년에 또 2300명 이상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바닥에 깔린 수많은 죽음을 생각하라”며 “살려 달라는 것이다. 일하다 죽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다”고 호소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생산 업무를 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23·여) 씨의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라”고 촉구했고, 2016년 10월 사망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28·남)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방송노동자들은 아직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법 제정 취지에 맞게 하위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누더기가 된 법으로 용균이 동료의 죽음을 어떻게 막을지 눈앞이 캄캄하다”며, “21세기에 맞지 않는 후진국형 하위법령이 통과한다면 한국은 암흑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년 전 제주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은 이민호(19)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는 “국가는 국민에게 4대 의무를 지우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하나 지키지 않는데 이게 나라인가. 이게 나라라면 누가 노동자로 살겠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특히 국회에 계류 중인 ‘산업현장 일‧학습병형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언급하며, “이 법이 통과하면 특성화고 2학년 학생은 학습 노동자로 현장에 투입된다. 학생을 노동자로 만드는 게 나라인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올해 4월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화물용 엘리베이터 5층에서 떨어져 숨진 김태규(26) 씨의 누나 김도현 씨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은 빈껍데기다. 하위법령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핵심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것인데 법에도 없고 정부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니 사람 목숨 값이 부품값이 되고 있다”며 억울함에 눈물을 보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김미숙‧황상기‧유경근 씨 등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대통령께 드리는 글’과 산안법 하위법령 의견서를 맡기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꼭 전달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대통령이 이 편지와 의견서를 받으면 이후 어떻게 검토했는지 결과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