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스포츠

김동진 은퇴 “선수 생활은 80점, 남들 가지 않은 길 걸었다”

등록 2019-07-01 17:51:27 | 수정 2019-07-01 17:54:00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4년 독일과 평가전
“올리버 칸 상대로 골 넣은 것, 잊지 못할 것”

김동진이 1일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은퇴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황금날개’로 불리며 한국 축구의 왼쪽 측면 수비를 책임졌던 김동진(37·홍콩 키치SC)이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2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김동진은 2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은퇴 소감을 밝혔다.

1982년생으로 2000년 안양 LG(현 FC서울)에서 데뷔한 김동진은 이후 파란만장한 선수 경력을 쌓았다. 이호와 함께 러시아 강호 제니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컵 결승 무대를 밟기도 했다.

울산 현대, 서울 이랜드 등에 이어 항저우 뤼청(중국), 무앙통 유나이티드(태국), 키치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국가의 축구리그를 경험했다.

태극마크를 달고도 맹활약했다. 김호곤(현 수원FC 단장) 감독이 이끌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로 선출된 것은 물론, 2006 국제축구연맹(FIFA)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2회 연속 참가했다. A매치 기록은 62경기 2골이다.

다부진 체격에 공수 밸런스가 잡힌 플레이스타일로 이영표(은퇴)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뇌혈류 장애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졸도하는 사고를 겪으며 정점에서 조금씩 내려왔다. 이듬해 남아공 월드컵을 끝으로 태극마크와도 멀어졌다. 하지만 김동진은 질환을 극복하고 꾸준히 현역 생활을 이어오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김동진은 “주위의 선배들이나 동료들이 은퇴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런 순간이 올까’라고 생각했다. 막상 이렇게 은퇴식에 오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역 생활을 더 이어갈 수도 있었다”면서도 “올해 초부터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현역을 이어나가는 것과 지도자를 하는 것 중 어떤 일이 더 가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 결과,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막상 은퇴를 한다고 하니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고 지난 시간들이 생각나기도 한다”면서 “한국 축구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2004년 12월 19일 독일과 A매치를 꼽았다.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었던 당시 한국은 3-1로 독일을 완파했다. 김동진은 이 경기에서 당대 최고의 수문장 올리버 칸(독일)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인 칸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고 웃으면서 “그때 한국은 최정예 멤버가 아니라 젊은 선수 위주로 싸왔다. 세대교체 기간이었다. 반면 독일은 베스트 멤버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선수 생활 점수는 80점”이라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어려웠던 길을 걸었다. 이 길을 견뎠다”고 자부했다.

24일 홍콩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와 친선경기가 선수로 치르는 마지막 게임이다. 향후 키치 1군 수비 코치 및 15세 이하(U-15) 팀 코치를 겸임한다.

“홍콩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지도자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이든, 동남아시아든, 유럽에서든 좋은 감독이 되는 것이 목표다.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은퇴 소감을 말하자면.

“너무나 감사드린다. 선배들이나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저 자리가 올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오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실은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올해 초부터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선수들을 가르치며 어떤 게 더 가치가 있나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 적절한 시기에 현명한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축구를 위해 유소년 지도자로서 이바지하도록 이 자리로 오게 됐다. 은퇴를 막상 한다고 하니까 지나온 시간이 생각난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갔던 2006년이 가장 좋았던 순간이다. 또 소속팀에서는 제니트에 있을 때 UEFA 컵을 우승할 때가 제일 중요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경험을 했다. 개인적으로 남는 A매치 경기는 2004년 12월 19일 A매치 부산에서 열린 독일과 경기다. 그때 독일은 정예멤버가 왔다. 한국과 경기하기 전에 3-0으로 일본을 이겼다. 우리는 세대교체 기간이었기에 베스트 멤버가 아니었음에도 이겼다. 그때 제가 올리버 칸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그래서 기억에 더 남는다.”

-은퇴를 하면서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있나.

“사실 주위에서는 그만하라고 이야기했다. (이)영표 형이 3주 전에 홍콩에 와서 ‘그만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해줬다. 김판곤 KFA 부회장님도 한 번씩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친구인 조재진은 ‘그만하고 한국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 말도 많이 했다. 가족들 또한 새로운 길을 응원해줬다.”

-제일 감사한 인물을 꼽자면.

“우선 아내에게 감사하다. 지도자 중에선 제가 데뷔하게 해주신 조광래(현 대구FC 사장) 당시 감독님이다. 어린 나이에 성장할 수 있도록 저에게 기회를 주셨고, 가르침을 주셨다.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또 한 분은 외국에 계신 딕 아드보카트(위트레흐트) 감독님이다. 제니트에 저를 같이 데리고 가셨다. 좋은 커리어를 쌓게 해주신 두 분이라 감사하다고 하고 싶다. 아직 연락은 못 드렸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지도자는 여러 유형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전술, 전략 등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마음을 읽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감독과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하지만 태국이나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선수들이 감독과 친구처럼 지내며 자기표현도 확실하게 한다. 한국적인 지도자 마인드와 해외의 마인드를 잘 합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함께 소통하는, 현장에서 120% 쏟을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 (롤모델이 누구인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건강 문제도 있었는데.

“딱 10년 전이다. 파주에서 쓰러지고 난 이후 축구인생이 롤러코스터처럼 확 바뀌었다. 많은 분들이 그 사건 이후로 건강에 대한 문제에 걱정을 해주셨다. 팬들이 이야기하는 것 보면, 건강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제가 여태까지 뛰는 걸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 이렇게 뛰는 걸 알고 나면, 아직까지 뛰었느냐고 묻는다. 자연스레 대표팀과도 멀어졌다. 사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은 쭉 ‘김동진이 축구선수로서 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것뿐이었다. 그 마음을 가지고 뛰었더니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큰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뛸 수 있었다. 가족에게도 고맙다. 가족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본인의 현역 시절에 점수를 매긴다면.

“80점은 줘도 될 것 같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왔다. 제가 러시아에 갈 때 만해도 주위에서 만류가 많았다. 중국, 태국, 홍콩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축구 팬들이 납득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한국선수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하다 보니 후배들이 저와 비슷하게 도전하더라. 저는 제 자신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뎠다.”

-다양한 리그를 뛰었는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솔직히 젊은 선수들에게 (동남아 리그 등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된다면 무조건 유럽을 택하거나, K리그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동남아의 시장 자체는 나쁘지 않다. 선수 개개인의 공을 다루는 감각이나 기술적인 면에선 뒤처지지 않는다. 또 중국은 투자를 많이 했다. 제가 갈 때쯤 니콜러스 아넬카, 디디에 드로그바 등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뛰었다. 그런 선수들을 계속해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수비수 개인의 발전에선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유럽은 환경, 그리고 주위 선수들의 품질 자체가 다르다.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등 상위권 리그가 아니라 벨기에, 네덜란드 리그라도 젊은 선수들이 가서 배웠으면 좋겠다. 얻어오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김동진의 전성기에는 측면 수비 고민이 없었다. 앞으로 좋은 측면 수비수들이 나오기 위해 필요한 점은.

“내가 뛸 때는 사실 이영표라는 존재가 너무 독보적으로 잘했기에 그런 걱정을 안 했다. 사실 지금도 뭐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대표팀에 있는 왼쪽 풀백들 다 개성이 있고 왼발을 잘 쓰는 선수들이 많다. 스타일이 조금 다를 순 있다. 김진수(전북), 홍철(수원) 모두 크로스가 좋고 공격 능력이 있다고 본다. 이 선수들이 경험을 더 쌓다보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해외애서 지도자를 시작하게 되는데 각오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홍콩엔 유럽서 온 지도자들도 여럿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배우고 한 단계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한국이 됐든, 동남아가 됐든, 유럽이 됐든 좋은 감독으로서, 좋은 지도자로서 남고 싶다.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이바지하는 좋은 지도자가 되겠다.” (뉴시스)



스포츠팀 기자 star@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