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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래위기를 예상하는 까닭…‘렛뎀잇머니’

등록 2019-09-18 17:40:42 | 수정 2019-09-18 17:46:24

136년 역사 독일 극장 도이체스 테아터 신작
2028년까지를 내다보다

안드레스 바이엘, 연극 ‘렛 뎀 잇 머니’ 연출. (도이체스 테아터 제공=뉴시스)
#1. 2020년 이방카 트럼프가 아버지의 후임으로 미국 대통령에 선출됐다. 캘리포니아는 독립을 선언한다.

#2. 2023년 이탈리아의 EU 탈퇴 이후, 유럽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정치인들은 기본 소득을 구제책으로 삼고 있다. 이익이 목표인 권력자와 자본주의가들은 개방된 바다 위에 인공섬 주(州)를 세워 국가 폐지와 함께 자치권 획득이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다.

#3. 2027년 외환시장에서의 패닉세일, 즉 갑작스런 요인으로 주가가 떨어질 때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마구 파는 일이 벌어진다.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이어진다. 유로의 거대는 중단된다. 첫 번째 약탈과 시위가 벌어진다.

#4. 법의 지배가 사라진 2028년 현재, 무력감과 고착된 권력 구조에 반대하는 운동 단체인 ‘렛 뎀 잇 머니’는 실패로 판명 난 해결책의 책임자들을 납치하고 심문함으로써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칠흑 같은 미래의 시나리오는 독일 연극 제작 극장인 도이체스 테아터(DT)가 20, 21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연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속 가상의 앞날이다.

유로존 붕괴부터 난민 대이동, AI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력, 데이터의 통제와 감시,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연극에는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약 10년간 유럽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사건들이 촘촘하게 나열된다.

독일 영화감독 겸 공연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60)은 18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렛 뎀 잇 머니’ 간담회에서 미래의 위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디스토피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위기는 종말로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기회가 된다”는 믿음이다.

“작품 안에서 개인의 권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권리를 되찾으려는 시도나 노력이 보입니다. 운동단체 ‘렛 뎀 잇 머니’는 위기를 발생시킨 원인 제공자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그것은 관객이 봤을 때도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연극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 테아터 제공=뉴시스)
미래의 시점에서 위기를 제시해주고, 지금 현재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자는 제언이다.

바이엘 연출은 10년 후를 상상했을 때 저항에도 ‘상업성’, ‘상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연극 속에서 운동단체 ‘렛 뎀 잇 머니’가 표적을 잡아서 인터넷에서 생중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경우에 상품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 팔로워들이고, 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팔로워들은 재미난 이야기나 쇼를 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팔로워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렛 뎀 잇 머니’라는 극 속 단체 이름이자 연극 제목은 극을 연구하는 기간에 나왔다. 미래의 영양에 대한 워크숍이었다. 식량과 영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경제와 돈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다른 참여자들이 언짢았던 한 참가자가 “렛 뎀 잇 머니!”, 즉 “돈이나 쳐먹어라”고 외친 것에서 착안했다.

‘렛 뎀 잇 머니’ 베를린 공연의 ‘관객과 대화’에 정치인이 참여하는 등 이 연극에는 정치적인 것들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바이엘 연출은 “평소 분리돼 있는 세계들을 연결시키고자 했어요. 정치와 예술의 세계처럼 말입니다. 또 특정 분야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과 예술가들의 세계를 연결시키고 싶기도 했고요. 예술은 즐거움을 제공하기를 요구 받는 반면, 지식은 세상에 대한 설명이나 해법을 요구 받기 마련이죠. 시민사회 안에서 이 세계들을 만나고 하고 싶었습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2011)과 유럽영화상 다큐멘터리상(2001) 등을 거머쥔 바이엘은 정치적으로 관여된 예술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 특징은 프로젝트의 기초 단계에서 도드라진다. 다년간 이어지는 연구 기간이다.

작년 9월 독일에서 초연한 ‘렛 뎀 잇 머니’ 역시 도이체스 테아터와 독일의 훔볼트 포럼이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들과의 리서치, 토론 등을 통한 ‘참여형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안드레스 바이엘, 연극 ‘렛 뎀 잇 머니’ 연출. (도이체스 테아터 제공=뉴시스)
도이체스 테아터와 독일의 훔볼트 포럼이 “우리를 굴복시킬 다음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해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휘치 퓨처(Which Future)?!’라는 연구와 연극 제작 프로젝트의 하나로 출발했다.

과학자, 예술가, 관객들은 2년간의 연구조사와 심포지엄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계획의 상관관계를 탐구했다. 향후 10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그려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렛 뎀 잇 머니’가 만들어졌다. 13명의 전문가, 250여 명의 참여자들이 얘기를 나눈 결과물이다.

바이엘 연출이 여기서 공통으로 발견한 것은 “예술가라 해도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책임이라는 게 있고, 우리는 그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통해 세상에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공연이 완성됐다고 이 작품이 마침표를 찍는 것은 아니다. 2020~2021년 예정된 마지막 토론이 피날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 최종 컨퍼런스에서는 연극이 도출해낸 질문에 대해 다시 토론한다.

“그때 아마 가장 주요한 논쟁은 기후변화가 될 것 같습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각 국가나 정부는 어떤 걸 해야 할 것인지, 그 비용은 누가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독일인들이 공통적으로 두려워했던 요소 역시 기후변화였다. 현재 독일을 비롯 유럽에서는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번 여름이 독일에서는 너무 건조해서 수확물이 피해를 크게 입었던 두 번째 여름이었습니다. 숲도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산림의 경우에 화재가 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10배 이상 늘었죠. 유럽의 각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다수로 들어오기도 하고요.”

연극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 테아터 제공=뉴시스)
궁극적으로 두려움의 중심에는 ‘나’가 있다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내가 이대로 잘 살 수 있을까’, ‘미래에 내 아이들은 어떤 미래에 살게 될까’와 같은 질문 말이다. 이것은 독일뿐 아니라 세계 보편적인 두려움이기도 하다.

‘렛 뎀 잇 머니’ 한국 공연이 이 작품의 첫 해외 공연인데,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제 생각에 한국과 독일은 미래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과거의 경험이 바탕일 수 있고요. 단순히 분단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위협에 대한 존재론적인 고민들, 뭔가를 빼앗을 수 있지만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고, 공통의 고민이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이체스 테아터가 내한하는 것은 2014년 데아 로어가 극본을 쓴 ‘도둑들’(Diebe)로 첫 내한한 이후 5년 만이다. 13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이체스 테아터는 막스 라인하르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하이너 뮐러,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등이 거쳐간 독일 최고의 명문 극장이다. 매년 레퍼토리 작품 50편, 신작 30편 등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80편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다양한 미장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렛 뎀 잇 머니’에서도 마찬가지. 무대 위에는 와이어에 매달린 커다란 철판이 바닥과 천장을 오간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인물들의 끝없는 설전과 라이브 방송,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댓글이 투사된다. 배우들의 애크러배틱한 움직임이 더해진다. 삶의 본질을 압축한 소금이 바닥에 깔려 있다.

이런 무대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래 중에서 이미 현실이 된 것도 있다. 2018년 극심한 기후 변화, 2019년 미국을 강타한 6등급의 허리케인 등이 보기다. 10년 뒤를 미래로 설정하고 경고하기에는, 너무 가까워 현상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나온다.

“20년 후가 되면 SF물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픽션에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 안에서 현재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 있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낸다거나, 생체기록이 담긴 칩은 이미 존재합니다. 또 작품 안에 나오는 사적 소유의 인공섬에 대한 것도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후라는 미래는, 지금 현재를 말하기 위한 거울로 작용해요.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미래 시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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