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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여성의 죽음에 사법부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등록 2019-11-29 12:21:51 | 수정 2019-11-29 23:59:58

성적폐 공동행동, “사법부는 성인지 감수성 평가 도입해야”

29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판사 오덕식은 옷 벗어라"고 주장했다. (뉴스한국)
녹색당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등이 꾸린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28)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공동행동은 구 씨를 비롯해 사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스러진 수많은 여성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흰 꽃을 들었고, 이름 없이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며 얼굴 없는 영정을 품었다. 이날 기자회견의 제목은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판사 오덕식은 옷 벗어라'다.

올해 8월 오덕식(50·사법연수원 27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구 씨를 상해·협박·재물손괴·강요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 최종범(28) 씨 선고 공판에서 앞선 네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오 판사는 심리 과정에서 ‘2차 가해’를 주장하는 구 씨 변호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 씨가 불법 촬영한 영상을 확인했다.

공동행동은 “오 판사는 판결문에 최종범의 증언 내용을 세세하게 명시하면서 그를 대신해 왜 그의 영상 촬영이 불법이 아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며,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사법부가 오히려 가해자 보호에 앞장서는데 이 땅의 여성들이 어떻게 존엄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나”고 질타했다. 또 “지금도 수많은 여성이 정의롭지 않은 판결에 좌절한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며, “우리 여성들은 단 하나의 목숨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서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29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판사 오덕식은 옷 벗어라"고 주장했다. (뉴스한국)
정다연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 출마자는 “우리는 많은 여성을 잃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권력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을 벼랑 끝으로 밀었고 사법부는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을 구제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사법부의 수많은 오덕식들이 피해 여성들에게 폭력 사건의 남성 피해자에게는 요구하지 않은 피해자다움을 요구했다. 또 문란하고 비도덕적인 여성 프레임을 씌워 피해자를 가해자처럼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정 출마자는 “잇따른 여성들의 죽음에 사법부는 자유로울 수 있나. 사법부의 수많은 오덕식들이 여성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나”고 물으며, “양심이 있다면 오 판사는 스스로 법복을 벗기를 바란다. 성범죄 사건 판결문에 굳이 필요 없는 성관계 장소 및 횟수를 기재해 여성의 범죄 피해 사실을 구경거리처럼 전시한 오 판사는 대한민국의 재판관으로 설 자격이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사법부는 판사들의 성인지 교육을 실시하고 법관 임명 및 인사에 성인지 감수성 평가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재판 및 판결문 작성 과정에서 젠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침을 구축하고 준수 여부를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29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판사 오덕식은 옷 벗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는 성지수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활동가가 오 판사의 역을 맡아 법복을 벗는 연출을 선보였다. (뉴스한국)
유승진 한사성 활동가는 “오덕식 판사는 재판 과정과 판결문으로 고인을 명백히 모욕했다”며,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 관점으로 사안을 보는 검찰과 재판부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본인의 실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모욕적인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아직 재판을 받지 않은 여성들 역시 자신이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회에서 가해자 친화적인 곳은 사법부뿐만이 아니다. 법원에, 국회에, 언론사 데스크에 그리고 세상 곳곳 어느 장소에나 오덕식이 있다”며, “성범죄자에게 피해당한 여자가 자꾸만 국가와 사회에게 죽임당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오덕식은 옷을 벗어라. 법원 아닌 곳에 있는 수많은 오덕식들도 옷을 벗어라”고 요구하며, “피해자를 낭떠러지로 몰아간 언론과 기자들, 피해자의 이름으로 동영상을 검색한 수많은 너희들. 지금까지 너무 많아서 이름을 부르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너희들의 이름을 부른다. 수많은 오덕식을 찾아내어 한 명 한 명 호명해낼 것이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