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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해 미치겠다" 유언 남긴 이재학 PD…유족,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

등록 2020-02-12 13:40:59 | 수정 2020-02-12 15:54:32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 열고 고인 명예 회복 요구

CJB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고 패소한 후 이달 4일 사망한 이재학 피디의 유가족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을 찾아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이재학 피디의 동생 이대로 씨가 입장문을 발표하는 모습. 2020.2.12. (뉴스한국)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까지 잘못되었는지 직접 보고 묻고 들으며 이곳까지 와보니 형이 얼마나 억울했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저희 형이 그래왔듯 그 뜻을 이어받아 저 역시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로 형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고 그에 따른 당연한 대우를 되찾겠다."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후 사망한 이재학(38) CJB청주방송 피디의 남동생 이대로 씨가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을 대표해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이 피디의 유족 및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방송계갑질119·희망연대노조 등이 주최했다.

이 피디는 2004년 조연출로 CJB청주방송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이 피디는 방송의 주제 선정부터 섭외·구성·촬영·편집 등 정규직 피디와 똑같이 일했다. 지자체 보조금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는 사업 수주 단계부터 문건 제작과 업무 수행은 물론 보조금 수령 및 정산까지 도맡았다. 이 피디가 CJB 청주방송에서 '아름다운 충북'·'TV닥터 건강클리닉' 등 주간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청풍논객'과 같은 평일 방송과 각종 특집 프로그램도 연출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 넘게 이 피디가 맡은 ‘아름다운 충북’은 매주 목요일 한 시간 동안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회 방송을 하려면 이틀 동안 촬영하고 사흘 동안 편집한 후 다음 주 방송주제까지 준비했지만 막내 작가가 받은 돈은 회당 30만 원, 책임피디인 이 피디가 받은 금액은 40만 원이었다. 2012년에도 월 80만 원 수준이었다는 막내 작가의 급여는 7년째 변함이 없었고 이 피디가 받은 돈은 월 160만 원이었다.

이 피디는 입사 14년 만인 2018년에 처음으로 인건비 인상과 인원 보강을 요청했다. 공식석상에서 인건비 인상을 요구한 이 피디는 그해 4월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다. 한 달 만인 5월 이 피디는 '방송계갑질 119' 오픈채팅방을 찾았다. '방송계갑질 119'는 2017년 11월 노동·법률단체가 만든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방송계 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온라인 모임이다. 이 피디는 개인의 권리 구제가 아니라 동료들의 처우 개선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방송계갑질 119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했지만 올해 1월 22일 패소했다.

이 피디의 가족들은 이달 4일 오후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그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그의 유서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한 게 없다"·"억울해 미치겠다"·"왜 부정하고 거짓말을 하나"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알려졌다. 방송계갑질 119 법률스태프이자 유족 대리인인 이용우 변호사는 "고인은 56개의 증거를 제출했고 회사는 고작 12개를 제출했다. 고인의 주장과 증거는 외면당했다. 고인의 근무 실태를 담은 동료들의 진술서가 핵심 증거였지만 진술서를 쓴 직원들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며 배척됐다. 반대로 진술서를 쓴 회사 간부가 법정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해당 진술서를 증거로 인정했다"며, "법원은 회사에 편승하고 동조해 결국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고 질타했다.

CJB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고 패소한 후 이달 4일 사망한 이재학 피디의 유가족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을 찾아 입장을 밝혔다. (뉴스한국)
이달 9일 CJB 청주방송은 유족과 협의 없이 입장문을 내고 “유족과 협의해서 이재학 피디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프리랜서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회사는 노력하겠다고 말하지만 진정성의 바로미터로 볼 수 있는 자료제출 요구에는 제출은커녕 연락도 없다”고 지적하며, “지금이라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추혜선 의원은 "고인을 해고하기 전 회사가 받은 노무 컨설팅에선 이재학 피디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청주방송이 이를 묵살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고인이 유서에서 '억울해 미치겠다'고 했겠나"며, "10일 유족들은 청주방송 사장과 면담을 진행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단을 꾸리기로 한 만큼 고인이 바로잡고자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기형적인 방송구조를 이 기회에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진실한 태도로 공동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도 방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며, "특별근로감독부터 비정규직 사용 실태조사까지 주어진 권한을 모두 사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씨는 “형은 약 14년간 ‘프리랜서 피디’라는 그럴싸한 이름하에 한 노동에 비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비상식적인 대우를 받았다”며, “회사의 근로감독과 지휘 하에 수행하는 중요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CJB 청주방송은 그들이 피디라고 불렀던 형의 14년을 이제 와서 지우고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분노했다. 그는 CJB 청주방송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정성 사과를 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 엄중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책 등을 하라고 요구하며 이것이 유가족의 뜻이라고 밝혔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