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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영토" 단순명료한 5가지 이유

등록 2011-09-26 12:00:47 | 수정 2013-01-03 18:15:05

독도의 진실' 개설 2일만에 12만명, 독도홍보 단순화 주력


‘독도=한국땅’이란 공식을 증빙할 자료를 조합해 영상화 시킨 '독도의 진실(www.truthofdokdo.com)' 사이트가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가수 김장훈과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교수가 지난 24일 오픈한 이 사이트는 개설한지 2일만에 12만명이 다녀가는 등 방문자가 폭주했다.

독도문제를 단순화 시켜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리는 목적에 주력한 이 사이트는 3~5분 가량으로 제작된 5개 동영상을 파트별로 나눴다. 영상은 각 파트별로 고문서와 지도를 통해 일본측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 촘촘하게 구성됐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든 자료검증을 통해 영상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다.

아래는 1~5파트별로 구분된 동영상과 영상속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설명 글이다.

#01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



#02 한국 고지도, 우산도는 독도


#03 일본 고문서에의 독도


#04 1905 일본 독도편입은 무효


#05 샌프란시스코 조약, 독도는 한국영토


독도의 진실 동영상 주요 내용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라는 주제로 구성된 파트 1에서는 과거 일본정부가 제작한 대부분의 공식 일본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8세기 제작되어 16세기까지 일본 공식지도로 사용된 ‘교키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독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쇼호일본지도(1655 공식지도), 겔로쿠일본지도(1702 공식지도), 교호일본지도(1717 공식지도), 대일본연해여지전도(1821 공식지도), 1877년 일본의 육군참모국이 착성한 공식지도 대일본전도에도 독도는 없었다.

반면 1894년 일본이 만든 대한민국 지도(신찬 조선국전도)에는 독도가 한반도와 같은 색으로 표기된 한국영토로 그려졌다. 일본이 오랜기간 독도를 한국영토로 그려왔고 일본 지도에서는 제외시켰기 때문에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파트2에서는 “한국 고지도에 나타난 우산도는 독도”라는 주제로 우산도와 독도가 동일한 섬임을 입증했다.

일본은 팔도총도(1530)에서 독도(우산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뒤바뀐 것을 두고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8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일본의 공식지도로 사용된 교키도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가 그려진 것을 비판하지 않고 한국의 고지도만 비판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일본인들은 한국지도에 나타난 우산도가 울릉도 동쪽 2km거리에 위치한 죽도(죽서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죽도에는 산봉우리가 없고 독도에는 산봉우리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산봉우리가 있는 우산도는 독도일 수밖에 없는 증거라며 18세기에 제작된 강원도 지도,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해동여지도 등에 그려진 우산도에는 산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산봉우리 존재로 독도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트 3에서는 “일본 고문서에에 드러난 독도”의 존재를 드러냈다.

본래 일본에서는 울릉도가 죽도(다케시마)로 불렸고 독도는 송도(마쓰시마)로 불렸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수차례 송도(독도)는 자신의 땅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문서로 남겨놨다.

그 증거는 ▲1696년 1월25일 안용복이 송도(독도)는 일본의 어떤 지방에도 소속돼 있지 않는다고 일본정부에 보고한 문서 ▲1870년 일본 외무성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조선의 부속이라고 일본 정부에 보고한 문서 ▲7년후(1877) 당시 일본 최고권력기관 태정관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내무성에 하달한 문서에 담겨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정부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 조선 땅이라고 결론내렸고 바로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파트4에서는 “1905 독도편입은 무효”라는 주제와 함께 1905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도군 소속으로 선포해 세계에 독도가 한국 소속임을 선포한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1905년 1월28일 독도를 무명, 무국적의 무인도로 규정 울릉도의 이름이었던 죽도(다케시마)를 독도 이름으로 하여 2월22일 시마네현에 강제편입 시켰지만 이는 억지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 이유는 ▲일본은 독도를 송도(마쓰시마)로 불러왔기 때문에 독도는 결코 무명이 아니었다는 점 ▲일본이 1870년 독도를 조선의 부속으로 1877년에 독도를 일본 영토 외로 정한 공식 문서를 남겼기 때문에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다라는 2가지 진실에 주목했다. 결국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독도침탈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마지막 파트5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는 한국 영토’로 인정한 과거 조약을 들어 설명했다.

1945년 8월15일 세계 2차 대전에서 항복한 일본은 연합군 점령하에 놓여진다. 연합국들은 일본점령 기간에 독도를 한국영토로 취급한다는 지령(SCAPIN 677호)를 일본에 하달했다. 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결과 1차~5차 초안까지 독도는 한국영토로 기재됐다. 7차 초안에도 독도는 연합국 합의라는 형식으로 한국영토로 기재되었다.

그런데 미 국무성은 6,8차 초안 등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기재했다. 하지만 이는 6.25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일본 통치하에 독도를 두려 했던 의도가 섞여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미국 초안에 반대하여 1951년 4월 독도를 한국영토로 작성한 영국 초안을 발표했고 한국은 1952년 2월 동해에 이승만 라인(평화선)을 선포하여 독도를 한국영토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때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은 반대하지 않아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이 다시한번 연합국들에 묵인으로 승인되었다.


정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