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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요한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장애 특성에 맞는 노동 고민해야”

등록 2020-01-03 14:57:01 | 수정 2020-01-03 17:16:27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 노동조합지부, 서울 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5일 사망한 설요한 씨의 죽음을 고용노동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뉴스한국)
지난달 5일 뇌병변 장애인 설요한(사망 당시 24·남) 씨가 사망했다. 2016년 2월 여수 한영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설 씨는 2018년 4월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로 활동했다. 지난해 4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동료지원가로 일을 시작했다가 8개월 만에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증장애인들과 관련 단체는 설 씨가 동료지원가로 일하며 저임금 고강도 노동과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며 사회적 타살을 주장한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장애인노동조합지부도 3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며, 현실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은 2018년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점거 투쟁으로 고용노동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특별팀을 꾸려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일자리를 기획하려 추진한 시범사업이다. 중증장애인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며, 일자리를 얻지 못한 중증장애인들을 찾아 취업 지원을 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업무 강도가 높고 임금은 적으며 살인적인 업무실적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동료지원가는 한 달 동안 일하지 않는 중증장애인 4명을 직접 찾아내 그달 안에 한 명당 다섯 차례씩 면담한다.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조모임을 진행하고, 상담일지는 물론 행정 서류도 직접 작성한다. 한 달 안에 실적 4명, 1년에 48명을 모두 채우면 한 달 약 66만 원(기본수당 80만 원에서 4대 보험료 제외)을 수령한다. 노동시간으로 60시간을 책정했지만 실적을 채우려면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더 일해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이 기본수당을 받지 못한다. 동료지원가가 받는 임금은 위탁자인 고용노동부가 책정한 시범사업 지원금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실적이 없다면 수탁기관은 참여자 한 명에 해당하는 지원금 전액을 반납해야 한다. ‘2019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 시행지침’은 “수행기관은 교부받은 지원금을 적정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고 사업지침을 위반하여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허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지출한 금액은 반납”이라고 명시했다.

설 씨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여수지역 중증장애인 40명을 찾아 개별 상담을 하고 자조모임을 만들어 장애인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그는 지난달 지자체와 지역 장애인공단이 중간 실사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실적을 정리하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특히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임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전해졌다.

설 씨가 몸담고 있었던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박대희 소장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은 지난해 4월부터 시행한 만큼 지난해에는 40명의 중증장애인을 발굴해 상담하면 되는 상황이었고, 설 씨는 이 기준에 맞게 상담을 진행했다. 실적을 못 쌓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공단에서 점검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로 1인당 다섯 번의 상담 횟수가 한 번이라도 누락하면 어떻게 하나 압박을 받았다. 실제로 누락되거나 한 건 없었는데 그 친구는 점검 과정에서 지적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또 “한 달에 60시간 노동하는 중증장애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에 기껏해야 3시간 정도인데 상담을 하려면 왔다갔다 하는데만 하루 2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돌아와서 상담일지 작성하고, 이를 일주일 분을 챙겨 주간회의 다시 월간회의를 하기에 실질적인 업무량은 중증장애인 입장에서 다소 과도하다”고 덧붙엿다.

장애인들은 ‘동료지원가’라는 직업이 중증장애인에게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명호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 지부장은 “그의 이름 설요한,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째다. 중증장애인의 장애와 속도에 맞는 일을 달라고 하니 저 위에 있는 높으신 공무원들이 실적 중심의 사업을 틱 던져놓고 그게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게 중증장애인 속도에 맞춘 일자리인가. 중증장이인의 몸에 맞는 노동 강도인가. 우리가 언제 이런 일자리를 원했나”며, “게다가 업무량을 못 채우면 수탁기관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도로 예산을 토하게 만들기에 동료지원가들은 더 큰 부담을 안고 일한다. 저들이 탁상행정으로 만든 ‘도덕적 해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 때문에 설 동지가 사망했다고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현재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는 박종희 조합원 역시 중증장애인으로 감당하기 힘든 업무라고 말했다. 그는 업무를 하려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을 할애해도 벅찬 상황이고 서류 작업을 할 때는 자정까지 야근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지 하나를 희생해서가 아니라 국가나 서울시가 중증장애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설 동지는 아직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누구 하나 죽어야 이슈가 되고 일의 강도가 낮아지는 이 사회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는 기자회견문에서 이 사업이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중증장애인의 취업지원을 하는 데 있어서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일하려는 의지를 북돋는 게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장애 상태와 몸을 움직이는 속도에 맞는 일자리가 무엇인지 살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이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여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일할 수 없는 자들에게 나랏돈을 지원해 시혜를 베푸니 시혜 받는 자는 도덕적으로 해이해서는 곤란하다는 인식이 24세 젊은 장애인 노동자를 압박했다”고 질타하며, “중증장애인은 시혜 받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노동을 원하며 또한 우리의 몸은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할 수 있다. 단지 경쟁과 효율·생산성을 강조하는 자본만이 우리의 노동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설 씨의 죽음이 동료지원가 사업의 잘못된 설계 때문이라는 점을 공식 인정하고 이재갑 장관이 공개 사과하는 것은 물론 유족의 바람대로 설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고용부는 이번 사업이 근로기준법과 노동관계법 위반 소지가 없는 현장 실태를 전면 조사하고, 지원비 중 동료지원가 인건비 활동을 별도로 책정해 원칙적으로 반납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