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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 카도고 “두려움 이기는 방법은 시도하는 것뿐”

등록 2020-01-23 17:10:26 | 수정 2020-01-23 17:14:47

신촌문화발전소에서 ‘여성서사’ 세미나- 워크숍
미국 스펠맨 대학 연극 공연학부 학과장

아쿠 카도고. (신촌문화발전소 제공=뉴시스)
“상처를 받은 분들의 이야기를 쓸 때, 어설픈 희망을 줘서 상황을 미화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소재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미화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지난 15일 서울 신촌문화발전소 극장 객석에 앉아 있던 한국 극작가의 질문에 미국 흑인 공연예술가인 아쿠 카도고(65) 미국 스펠맨 대학 연극 공연학부 학과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면서 흑인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1931~2019)의 대표작 ‘빌러비드(The Beloved)’를 언급했다. 빌러비드는 ‘사랑받은 사람’이란 뜻.

작품 속에서는 흑인노예였던 엄마의 손에 죽은 두 살배기 딸의 이름이다. ‘빌러비드’는 탈출 노예였던 마가렛 가너가 노예 사냥꾼이 나타나자, 품에 안고 있던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비극적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모리슨은 문학 작품 속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 여성으로서 겪는 슬픔과 좌절을 이야기해요. 그런데 인종, 피부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죠. 제가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공통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비극적인 장면 다음에 어떻게 극적으로 풀까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안에 죽음이 있고 이 순간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삶은 계속돼야 하니까요. 예술가는 무엇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지 계속 관찰해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다 기록을 해야 해요.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시도하는 것밖에 없어요.”

카도고 교수는 이날과 16일 신촌문화발전소에서 ‘여성서사’를 주제로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었다. 미국과 호주를 중심으로 공연 창작자이자 안무가, 공연예술교육가로 활동 중이다.

아쿠 카도고 세미나. (신촌문화발전소 제공=뉴시스)
이번 세미나에서는 자신이 브로드웨이 초연 배우로 출연한 엔토자케 샹게(Ntozake Shange)의 ‘무지개가 떴을 때 / 자살을 생각한 흑인 소녀들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흑인여성서사의 대안적 흐름과 핵심적 창작방식을 전달했다.

워크숍에서는 시인이자 소설가 겸 극작가인 샹게가 처음 고안한 ‘코레오포엠(Choreopoem)’에 대해 소개했다. 코레오포엠은 안무, 음악, 노래 등이 결합한 극적인 형태다.

한국 문화공간이나 공연장에서 따뜻하게 감싸주고 포용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카도고 교수는 신촌문화발전소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건물 자체가 유리로 돼 있어, 이 주변의 이웃과 공동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자인”이라면서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 덕분에 커뮤니티(동네)가 이 공간을 잘 포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신촌은 젊은 사람들이 늘 가득한,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라 “신선한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라고 느꼈다.

4년 반 만에 다시 내한한 카도고 교수와 한국은 사실 인연이 깊다. 2010년대 초반 용인대학교 초빙교수로 뮤지컬 강의, 프로덕션에 참여했다. 극단 사다리와 라트어린이극장에서 연출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 대학에 재직 당시에는 제가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 어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예술이 언어라는 희망을 다시 발견했죠.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업을 했는데 시가 발전이 돼 음악이 되고, 단어로도 확장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고 학생들과 신뢰를 쌓았죠. 한국에서 즉흥작업이나 공동 창작 등 여러 실험을 많이 했는데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일어난 뒤 한국 공연계에서는 여성서사를 둘러싼 풍경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젠더 프리캐스팅’이 그 중 하나다. 남성 역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는 등 배역 성별의 구분을 파괴하는 것을 가리킨다.

‘젠더프리 캐스팅’을 해봤다는 카도고 교수는 해외에서는 이전부터 이런 시도들은 많이 있었다고 짚었다. “세네갈에 간 적은 없지만, 세네갈은 무슬림국가죠. 그래서 여성들만 있는 파티가 있습니다. 그 파티에 있던 유일한 남성은 아마 음악연주자였을 거예요. 하지만 여성들만 모인 파티는 정말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주 거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하. 그래서 제가 같이 작업하는 그룹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흉내 내는 놀이, 플래시작업 등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박장대소할 만큼 재밌어요. 제 개인적인 삶에서 그런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고, 많이 경험한 적이 있는데 단지 그것을 무대에 가져다 놓은 것이죠.”

아쿠 카도고. (신촌문화발전소 제공=뉴시스)
그래서 자신에게 ‘젠더프리 캐스팅’ 같은 시도는 ‘미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예술가라서 주어진 작업이 아니라 “그 전부터 예술가이고 배우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유”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여러 문제에 대해 첨예하게 고민 중인 한국 공연계 여성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카도고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작업 안, 그 중심으로 발을 딛고 들어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짚었다.

더 이상 정식 극장, 뉴욕에서 공연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그녀는 “저는 어디에서도 존재할 수 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만족합니다. 또한, 다음 작업이 저를 기다리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성장시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카도고 교수는 항상 학생들, 특히 여성학생들 그리고 여성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단 두 명, 세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거실이라도, 세 명을 데리고 그곳에서 공연을 하세요!”

그러면서 작년 쿠바 하바나에서 기억을 떠올렸다. “그곳의 사람들은 정말 가난하죠.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좁은 집 거실이라도 공연을 하고 전시회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만들고, 행동하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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