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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홍길동전·흥부전도 아닌 김덕수傳, 어깨 무겁다”

등록 2020-05-11 17:29:12 | 수정 2020-05-11 17:33:03

28일부터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데뷔 63주년 명인 일대기 다른 음악극

김덕수. (세종문화회관 제공=뉴시스)
꽹과리는 천둥, 장구는 비, 북과 징은 구름과 바람이다. 자연의 상징성을 머금은 이 네 악기가 동시에 울려 퍼지며 빚어내는 폭발적인 화음은 곧 폭우와 천둥을 뚫고 이겨낸 환희다.

1978년 2월 당시 공연예술의 발화점으로 통한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남사당패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 등 4명이 ‘사물놀이’를 만들어냈다. 연출가 겸 공연기획자로 참여한 심우성(작고)이 이 명칭을 창안했다.

2014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을 근간으로 2009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남사당’의 마지막 후예 중 한 명이 ‘사물놀이 창시자’인 명인 김덕수(68)다.

세종문화회관과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데뷔 63주년을 맞은 김덕수 명인의 일대기를 다룬 음악극 ‘김덕수전(傳)’을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김덕수 명인은 11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도 아닌 ‘김덕수전’이라니. 제가 지은 말이 아니라 생소하지만 어깨가 무겁고 중압감이 든다”고 말했다.

농악 4개 악기로 구성된 사물놀이로 국악계뿐만 아니라 세계 음악계를 뒤흔든 김덕수는 “제가 하는 연희는 풀뿌리”라고 했다. “풍물, 탈춤, 무속 등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생활 속에 속한 전문 예인 집단, 즉 광대”라는 것이다.

“서민과 함께 울고 웃는 거죠. 마을 단위로 돌아다니며 기본이자 필수 악기인 꽹과리, 징, 장고, 북을 사용한 거죠. 우리 서민 사회에는 악기가 없어요. 이 악기 정도에 연주할 수 있는 분이 계시면 날라리, 즉 태평소까지가 다였죠.”

공연의 제작을 맡은 이동연 예술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이 제작총괄과 극본을, 맡은 작품이다. 이 감독이 1년여에 걸쳐 진행한 김덕수와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극단 골목길의 대표이자 ‘청춘예잔’, ‘경숙이, 경숙아버지’, ‘개구리’ 등을 연출한 박근형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무용가 정영두, 퓨전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 사물놀이 본도 함께 한다.

극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사물놀이 탄생 이전을 다룬다. 6·25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태어난 ‘국악신동’ 김덕수 명인이 1957년 아버지가 계시던 남사당의 새미(무동)로 데뷔를 하면서 연희에 입문, 1961년 당시로는 최고 공연단체이자 혜은이가 보컬로 나선 ‘낙랑악극단’에서 활동하던 때를 거쳐 1960년대 한국민속가무악단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공연한 이야기를 담는다.

김덕수전. (세종문화회관 제공=뉴시스)
김덕수는 1978년 2월 공간사랑에서 사물놀이의 공연을 하게 됐다. 2부에서는 사물놀이의 탄생부터 김덕수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희의 전성시대를 이끄는 모습을 그린다. 기획자로서뿐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김덕수 명인은 1998년 한예종에 전통연희과를 설립했다.

김덕수 명인은 갈수록 남사당패나 광대나 시대가 잊혀진다고 아쉬워했다. “언제부터인가 서양 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 것에 대해 무지할 정도로 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우리 DNA, 핏속에 우리만의 존재성을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에 좋은 것이 많지만 한류의 피 같은 리듬과 울림, 즉 신명은 우리만의 맛과 멋이에요. 그것 때문에 사물놀이가 탄생했죠.”

우리 전통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판, 즉 마당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김덕수는 “우리 전통 문화의 가장 큰 벽”이라고 했다.

“판, 마당은 한국적 미학의 근본이에요. 버릴 수는 없죠. 그래서 실내 공간을 어떻게 마당화할 지 고민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사물놀이에요. 마당의 풍물 원형을 깬 거죠. 시각적으로 즐기던 놀이를 청각적으로 극대화한 것이 사물놀이입니다.”

사물놀이의 또 다른 강점 중 하나는 국민의 희로애락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1년 365일 24절기에 녹아 있다. 노동의 음악이었고, 곡을 할 때 울려 퍼진 음악이면서, 국가 유사시에는 군악이기도 했다. 군악? 전국의 풍물 가락을 살펴보면 군사용어가 많다. 오방진, 일자진, 을자진 등이 예다.

그래서 ‘김덕수전’은 김덕수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덕수 명인은 1990년과 1998년 두 차례 북한 평양에서 공연한 것을 인상 깊은 일로 꼽았다. 그는 1990년 윤이상 작곡가의 초청으로 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이 조직한 남측 악단과 평양 땅을 밟았다.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사망한 뒤 대학로 연우극장에 올려졌던 시국 춤 공연 ‘바람맞이’도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사물놀이 연주에 맞춰 춤꾼 이애주가 물고문, 불고문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사회에 참여하는 광대의 정신을 발휘한 것인데, 당시에는 그런 것에 대해 몰랐어요. 나중에 돌아보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김덕수전. (세종문화회관 제공=뉴시스)
멜로디 이전에 리듬에 있다며 사물놀이가 한류문화라고 짚은 김덕수 명인은 팝의 거장 스티비 원더를 비롯해 세계적인 뮤지션들과도 연주했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타이틀곡 ‘하여가’뿐 아니라 EDM과 협업 등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 한 이력이 있는 그는 자신은 ‘로큰롤 세대’라고 자처했다. 하드록은 물론 밥 딜런, 존 바에즈 같은 모던 포크까지 들으며 자랐다는 것이다.

“같은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와 라스베이거스 같은 공간에서 공연하기도 했어요.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뮤지션과 협업할 수 있었던 것은 광대만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이에요.”

20대 초반에 공간사랑 주변에서 작업하며 김덕수 명인의 사물놀이를 여러 번 봤다는 박 연출은 “객석에서, 옆에서 보다가 같은 연습실에서 연주를 들으니 감개무량”이라면서 “예술가 이면의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늘에서 내렸거나 땅에서 솟구친 것이 아닌 비바람을 맞고 이겨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동연 예술감독은 “김덕수 명인이 많은 공연을 하고 실험을 하며 협업을 했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자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은 “공공극장의 사명으로 우리 전통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며 이번 공연에 대한 의의를 전했다.

코로나19로 설 무대를 잃은 것은 물론 갈수록 지쳐가는 미래의 세대에 사물놀이, 광대를 전하고 싶다는 김덕수 명인은 “지구상에 신명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작품에는 은연중에 슬픈 이야기도 묻어난다. “원조 사물놀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원년 멤버들은 결성한 지 10년도 안 돼 다 헤어졌고 사물놀이가 시작된 지는 벌써 43년이나 됐어요 ‘김덕수전’에 독백 같은 신이 나오는데, 요즘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할까 고민이에요. 인생의 고해성사와 같죠.”

이번 공연은 코로나 19로 지친 국민들을 위해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전석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18일 오후 2시부터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www.sejongpac.or.kr)를 통해 선착순으로 좌석을 신청 받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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