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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문화의 원조’ 음악다방서 마음 달래던 노랫말들

등록 2020-05-15 17:28:10 | 수정 2020-05-15 17:32:45

늴리리 맘보가 실린 음반. (국립한글박물관 제공=뉴시스)
노래에는 그 노래를 듣고 불렀던 시절의 시간과 공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음악다방에서 흘러나오던 재즈풍의 노래 ‘청춘계급’(1938년)에는 ‘탭ᄯᅢᆫ쓰(tap dance·탭댄스)’․ ‘샴팡(champagne·샴페인)’․ ‘웟카(vodka·보드카)’ 등 서양의 이국적인 문화와 음악을 즐기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모습이 노랫말에 그려져 있다.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돼 3년간의 피난살이가 끝난 뒤 서울에서는 맘보를 중심으로 한 춤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부기우기’, ‘맘보’, ‘차차차’처럼 음악이나 박자의 이름을 활용한 흥겨운 제목과 노랫말을 통해 전쟁으로 어둡고 무거워진 사회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했다.

‘도라지 맘보’, ‘아리랑 맘보’ 등 전통 민요의 소재를 가져와 노랫말을 만들기도 하고 ‘체리핑크 맘보’, ‘정열의 맘보’ 등 시대를 반영한 소재로 노랫말을 붙이기도 했다.

‘슈샤인 보이’(1954년)의 ‘헬로 슈-샤인 헬로 슈-샤인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라는 경쾌한 노랫말 뒤에는 긴 한국 전쟁의 피난살이 중에 생긴 전쟁고아들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대상도 감춰져 있다.

또 1960년대 이후부터는 오늘날 클럽문화의 원조가 된 다양한 음악감상실, 음악살롱, 뮤직홀, 카바레 등이 성행하기 시작해 1970∼1980년대를 휩쓴다. 탁자와 함께 놓인 소파에 앉아 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노래를 감상하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대중가요의 노랫말과 함께 다양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20년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를 15일부터 10월 18일까지 개최한다.

임과 함께가 수록된 음반. (국립한글박물관 제공=뉴시스)
전시는 대중가요 노랫말의 발자취와 노랫말에 담긴 우리말과 글의 묘미를 소개한다. 그간 대중가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가 열렸지만 대중가요 앨범이나 가수가 아닌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알려진 ‘낙화유수’(1929년)부터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아이돌(IDOL)’까지 총 190여 곡의 대중가요 노랫말과 함께 각종 대중가요 음반·가사지·노랫말 책·축음기 등 총 206건 222점의 전시 자료를 소개한다.

전시장은 1부 ‘노랫말의 힘’, 2부 ‘노랫말의 맛’으로 구성된다. 1부 ‘노랫말의 힘’에서는 1920년대 말부터 오늘날까지 대중이 살아온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랫말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2부 ‘노랫말의 맛’은 대중가요 노랫말에 담긴 말과 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외국의 노랫말을 번안한 우리 노랫말부터 일상 언어가 한 편의 노랫말로 태어나는 과정도 볼 수 있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와 정서를 담고 있다. 1920년대부터 1945년 이전까지는 식민 지배 아래에서 대중이 겪은 설움과 울분을 비유적인 단어들로 표현하는 시 같은 노랫말이 유행했다.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노랫말을 수정한 ‘목포의 눈물’(1935년)이 대표적이다. 겉보기에는 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 관한 노랫말로 읽히지만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이라는 구절은 본래 ‘삼백년 원한 품은’이라는 말을 변용한 것으로 노래가 만들어진 1935년으로부터 300여 년 전 무렵 일어났던 임진왜란(1592∼1598년)을 암시한 것이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우리말의 표기와 발음을 미묘하게 바꾼 것이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임’ 역시 화자가 사랑하는 연인이기보다는 ‘조국의 광복’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어로 이해되면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기획특별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뉴시스)
195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7년 추정)와 미8군 쇼 등을 통해 들어온 이국적인 지명과 리듬을 섞은 ‘늴리리 맘보’(1957년) 같은 노랫말이 인기를 얻었다.

1960∼1970년대에는 도시의 화려한 성장과 이상을 표현한 ‘임과 함께’(1972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고향역’(1972년) 같은 노랫말이 동시에 유행하기도 했다. 1970∼1980년대에는 포크송과 발라드가 유행하면서 ‘아침이슬’(1971년)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1987년)처럼 서정적인 노랫말이 대중에게 호응을 얻었다.

전시장에는 최진희의 노래 ‘사랑의 미로’(1984)의 작사가 지명길과 주현미의 노래 ‘짝사랑’(1989) 작사가 이호섭이 노랫말과 삶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삶의 노랫말, 노랫말의 삶’ 영상 등도 마련됐다.

박물관 2층 카페(ㅎ카페)에는 DJ박스가 설치돼 전시기간 추억의 음악다방을 운영한다. 평일에는 1970∼1990년대 애창곡 30곡을 선정해 틀어주고 주말과 휴일에는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틀어준다. 전시와 관련된 노랫말 문제 풀이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한글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그동안 노래의 곡조에 이끌려 무심코 흘려보냈던 노랫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고 내 삶의 선율과 박자를 담고 있는 나만의 대중가요 노랫말 한 소절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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