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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구독경제 시대의 청춘 위로가…뮤지컬 ‘렌트’

등록 2020-06-18 17:37:38 | 수정 2020-06-18 17:41:31

뮤지컬 ‘렌트’. (신시컴퍼니 제공=뉴시스)
청춘은 공연장에서 풀려나왔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뒷골목의 젊은 예술가들 이야기(오페라 ‘라보엠’)가 20세기 말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뮤지컬 ‘렌트’)로 옮겨왔다.

이달 신도림역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렌트’는 21세기 서울에서 다시 ‘재생’되고 있는데, ‘청춘의 정경’은 언제나 공감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청춘은 그 자체로 생기롭지만 시대는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함부로 엄습하는 재난이 그렇다. 19세기에는 폐결핵, 20세기에는 에이즈, 지금은 코로나19가 습격하고 있다.

청춘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작품으로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작품 속 주요 소재 중 하나는 에이즈다.

주인공인 가난한 로커 로저, 클럽 댄서 미미는 에이즈의 그늘 아래에 살고 있다. 라슨이 이 작품을 쓸 때만해도 에이즈는 상당수 청춘에게 공포의 상징(1990년대 중반부터 에이즈 관련 신약이 등장함)이었다.

감염되는 원인이 불분명하고 마땅한 치료제도 없었다. 걸리는 이유, 발병 현상은 확연히 다르지만 현재의 코로나19가 안겨주는 막연한 불안감과 같다. 청춘의 생기로움은 시대의 뒤숭숭함에 볼모로 잡힌다.

덧없는 시어들로 ‘빌려(Rent) 삶을 사는 듯한’ 젊음의 공허함을 노래하는 작품 분위기도 현재에 맞물린다. 월세 낼 돈도 없는 ‘렌트’ 속 청춘의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다른 식으로 변주된다.

뮤지컬 ‘렌트’ 로저 오종혁·미미 아이비. (신시컴퍼니 제공=뉴시스)
취업조차 힘든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소유하는 대신 모든 것을 빌려 쓴다. ‘공유경제’라고 번듯하게 포장된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소유물도 없이 야금야금 자신의 것을 빼앗긴다. 여전히 ‘렌트’의 세계다.

9년 만에 돌아온 ‘렌트’는 이처럼 명작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은 일방적으로 흐르지만, 가치는 떠내려가지 않는다.

그 가치의 절정은 위로다. 사랑과 맞닿는다. ‘렌트’에는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등장한다. 남녀, 남남, 여여. 경계와 방식을 구분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기’에 대해 노래한다.

이런 부분을 대변하는 인물은 거리의 악사이자 동성애자인 ‘엔젤’이다. 그는 콜린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줬다. 자신의 그로테스크한 겉모습을 낯설어하고 무서워하는 뉴욕 관광객에게 진심으로 친절을 다해,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준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친구들은 사랑의 방식을 놓고 혼란스러워도 하지만 콜린이 이를 다시 일깨워준다.

전위적 행위 예술가 모린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 시대 청춘에게 희망을 안긴다. 재개발에 항의하기 위해 온몸을 거침없이 쓰며 ‘음메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일이 없어 보일지라도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자 하는 ‘렌트’ 속 청춘들로 인해 이 작품의 슬로건 ‘노 데이, 벗 투데이(No day, but Today)’가 머리가 아닌 마음속에 각인된다.

뮤지컬 ‘렌트’ 엔젤 김호영·콜린 최재림. (신시컴퍼니 제공=뉴시스)
컴컴해 보이는 삶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청춘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도 찍힌다. 로저의 룸메이트이자 극의 내레이터이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마크가 자신의 주변 것을 매일 기록하듯 우리도 저마다의 리듬과 멜로디로 삶의 부정과 긍정을 스케치한다.

부정과 긍정이 항상 공존하는 이유는 청춘은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렌트’도 사실 ‘미완성의 유작’으로 통한다. 라슨이 개막 하루 전 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매번 완성된 그림을 상상하며 각자의 퍼즐을 맞춰야 한다. 어떤 작품보다 같은 캐릭터라 해도 배우의 매력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이유다.

로저 오종혁·장지후, 미미 아이비·김수하, 모린 전나영·민경아, 마크 정원영·배두훈, 엔젤 김호영·김지휘, 콜린 최재림·유효진 등 국내 뮤지컬 청춘스타들을 몽땅 모아놓았으니 어떤 캐스트 조합을 봐도 믿음직스럽다.


삶의 우울과 불안 속에서 피어오르는 실낱같은 희망의 빛줄기, 그것은 연대에 대한 갈급함으로 이어진다. 청춘들의 앙상블 뮤지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뮤지컬 ‘렌트’는 그래서 세월과 관계없이 유효할 여지가 크다. 멈춰 있는 듯 보여도, 청춘은 다 같은 손을 잡고 매일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렌트’를 보면 후유증을 각오해야 한다. “52만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1년의 시간”이라고 작품의 주제곡 ‘시즌 오브 러브’를 계속 중얼거리고, ‘렌트’와 함께 라슨이 남긴 유일한 두 작품 중 하나인 ‘틱틱붐’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진다.

올해는 뮤지컬 ‘렌트’ 한국 공연 20주년이 되는 해다. 1997년 ‘엔젤’ 역으로 이 작품과 첫 인연을 맺고 2011년 오리지널 연출 마이클 그리프와 함께 ‘렌트’ 리바이벌 공연의 협력 연출을 맡았던 안드레스 세뇨르 주니어가 이번 시즌을 지휘한다. 8월 23일까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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