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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소독제가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 대학병원서 4년간 사용…사참위, "정부 조사 절실"

등록 2020-06-29 15:55:51 | 수정 2020-06-29 20:45:41

"하이크로정은 지금도 판매 중…가습기 살균제 문제 옛날 이야기 아냐"

29일 오전 사참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식기 소독제가 4년 이상 한 대학병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쓰인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최성미 과장·최예용 위언장·변바른 조사관. 2020.6.29. (뉴스한국)
400병상 이상 규모의 A대학병원이 4년 넘게 식기소독제를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이전에 한 번도 보고된 바 없는 사례인 만큼 A병원은 물론 요양병원을 포함한 모든 병원의 감염관리지침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병원이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감염관리지침서에 따라 식기소독제인 하이크로미니(정식제품명 하이크로정)'를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병원이 가습기 살균제를 감염관리지침에 근거해 지속적·체계적으로 사용한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이크로정은 흰색 발포정이다. 2003년 혼합제제 식품첨가물로 출시해 식재료를 씻을 때 살균·소독하는 용도로 쓰였다. 2009년 이후에는 '기구 등의 살균소독제'로 유형이 바뀌면서 식품용 기구 살균·소독용으로 쓰였다. 원재료의 50%가 이염화이소시아뉼산나트륨(NaDDC)이며 나머지 절반은 아디핀산·탄산수소나트륨이다.

2009년 4월 식품첨가물에서 기구 살균으로 품목이 바뀐 건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이 NaDDC에서 멜라민 유사물질인 시아뉼산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멜라민은 공업용 화학물질로 2008년 중국 멜라민 분유파동 당시 6명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멜라민과 시아뉼산을 함께 섭취하면 멜라민의 독성이 상승하면서 신장·방광 결석을 유발할 수 있다.


NaDCC를 물에 녹이면 락스 주성분인 치아염소산나트륨이 발생하면서 곰팡이와 세균을 없앨 수 있다. 물에 쉽게 녹고 살균효과는 우수하며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병원 수술실 침대를 살균하거나 급식 조리기구를 소독할 때 자주 쓰인다. 이렇게 용법에 맞게 사용하면 인체에는 무해하다. 문제는 가습기에 하이크로정을 넣어 호흡기로 흡입할 경우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는 점이다.

최성미 사참위 가습기살균제조사2과장은 "국립환경과학원이 쥐 실험을 한 결과 NaDCC는 흡입독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반복 흡입 노출에 의한 조직병리학적 검사 결과 폐에서 독성 변화를 관찰했다"고 설명했다. 변바름 조사관은 "NaDDC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간질 세포가 증식하면서 폐포와 폐포 사이의 벽이 두까워지고 이로 인해 공기가 드나드는 폐포관이 좁아지면서 가스 교환 능력에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식품용 기구를 살균·소독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하이크로정이 어떻게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했을까. 변 조사관은 "조사 과정에서 관계 업체로부터 '당시 NaDDC 가습기 살균제가 팔리고 있어서 팔아도 되는 줄 알았다'·'용도를 (기구 살균소독제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변경하면 판매처가 늘어서 수입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랬다'는 진술을 들었다"고 밝혔다.

사참위 조사에 따르면, 의약품 도매업체인 C업체는 하이크로정 제품설명서에 '가습기 내(물통·분무통) 세균과 실내공기의 살균·소독 목적으로 개발한 제품으로 세계 60여개 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안전한 제품'이라는 허위 문구를 넣었다. 하이크로정의 특징으로 공기 중의 독감·간염·에이즈 등 바이러스를 제거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C업체는 NaDCC 임상자료에서 이름만 하이크로정으로 바꿔 A병원에 제출했다고도 알려졌다. 이를 전달받은 A병원은 납품업체인 B업체에 하이크로정을 주문했고, B업체는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100정 들이 374상자 총 3만 7400정을 A병원에 공급했다.

C업체의 광고·판매 행위는 처음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판매를 시작한 2007년 당시 식품위생법 11조(허위표시 등의 금지) 위반에 해당하고 행정 제재의 대상이지만 당시 식약처와 지자체 등은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A병원은 C업체가 작성한 제품설명에 따라 감염관리지침서에 가습기 물 5~7리터에 하이크로정 1알을 넣도록 명시했다. 이는 2010년 개정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 과장은 "(조사에 응한 한) 간호사는 '하루에 한 번 가습기에 든 물에 발포정 1정을 넣어주었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A대학병원이 4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한 식기소독제 하이크로정. 2020.6.29. (뉴스한국)
사참위가 A병원에서 하이크로정을 사용한 사실은 2018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용 다중이용시설 실지조사' 용역을 발주해 종합병원 등 22곳과 시립요양원 1곳의 사용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환경부에 접수한 피해신청인 현황을 분석하던 중 확인했다.

지금까지 NaDDC를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엔위드'·'세균닥터' 두 가지인데, 이번에 사참위가 NaDDC를 사용한 제품을 추가로 더 확인한 것이다. 사참위에 따르면, 엔위드를 사용해 건강피해를 입었다고 환경부에 신고한 사람은 이달 현재 93명이다. 엔위드와 다른 가습기 살균제를 함께 사용한 사람 중 5명이 폐질환을 인정받았고, 엔위드 제품만 사용한 2명과 엔위드와 다른 제품을 함께 사용한 8명이 각각 천식 질환을 인정받았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 위원장은 "식기소독제가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한지 모른채 병원이 '감염관리지침서'에 따라 오랜 기간 잘못 사용한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며 보건복지부 등 관련 정부 기관이 병원의 감염관리지침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가 쓰인 건 1994년부터 2011년까지"라며 "병원에서는 감염관리지침을 기본으로 운영하는 만큼 1994년부터 모든 병원의 감염관리지침을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하이크로정은 지금도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이건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